삶과 죽음의 흔적

배에 동승했던 어떤 새들의 이야기

by 전희태
DS00511.jpg 떨고 있던 새들이 쉬던 선실 출입구 계단입구

용맹스러운 낙하산 부대원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가슴에 부착하는 윙의 모습과 꼭 닮은, 새의 한쪽 날갯죽지가 갑판 위에 버려진 채 애처롭게 비에 젖어가고 있다. 패용을 위한 금속제의 윙이 아닌 실체로서의 윙, 즉 어떤 새의 뜯긴 반 뼘 남짓 크기의 날갯죽지 한쪽이 그렇게 뒹굴고 있다.


며칠 전부터 우리 배에 무임으로 승선하여 함께 여행을 하던 매가 매정하게 한 짓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자세히 살피니 갑판 위 여기저기에 마구 취급당한 잔 깃털의 뭉치 여러 개가 눈에 뜨인다. 그제 저녁. 윙 브리지에서 밤을 지내려던 놈을 어찌해보려고 일항사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접근했을 때, 녀석은 과감히 날개를 차고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용기를 부려가며 도망쳤었다.


어딘가 숨어 어제는 하루 종일 눈에 뜨이지 않고 있다가 저녁 무렵 바다를 건너다가 지친 날개를 쉬려고 배로 찾아들었던 작은 새들을 약육강식의 제물로 삼는 과정에서, 남겨 놓은 죽음의 흔적이다. 그 날갯죽지를 치워 버리어, 죽은 새의 장례를 치러주며 좋은 곳에 환생토록 빌어주고, 갑판은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자.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냥 놔두기로 한다.


방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하우스의 바깥 계단 아래에, 살아있는 두 마리의 새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살며시 접근해서 손으로 잡아도 움츠려 도망갈 생각을 못하고 있는 극도의 탈진 상태인 녀석들을 살그머니 손에 쥐어 주방으로 가서 우선 물부터 주었다. 어차피 그냥 살아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따뜻한 마실 물도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이다. 그 둘은 매가 갑판 상에 버려놓은 비참한 날갯죽지 같은 쓰레기가 아닌, 아직은 숨 쉬며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으니 예전에 미국 오리건 주의 컬럼비아 강가 롱비유(Long View)항에 곡물을 실으러 갔을 때 기억이다. 입항수속은 이미 끝나고 선적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허리가 굽어 보이는 늙은이가 배로 올라와서 자신을 검역관이라 소개를 한다. 그리고 나선 본선의 음식물 쓰레기 상태를 점검해 본 결과 갑판에 서 귤껍질 - 부식을 싣고 난 후 선원들이 한 개 까먹고 무심히 버린 - 을 발견했다며 이런 것은 범칙금 500달러에 해당하는 위법사항이라며 인정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던 일이다.


달래며 사정해서 서명은 안 했지만 그런 정년퇴직을 벌써 했을 늙은이들의 일자리를 주기 위해 미국은 이런 악랄한(?) 방법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나 혼자서 짝사랑 같이 해 왔던 미국에 대한 호감이 망가지는 배신감에 더욱 씁쓸했던 경험도 함께 했었다. 그렇게 늙은이답지 않게 딱딱하게 굴던 검역관이 오늘 우리 배의 갑판 상에 널브려져 있는 새의 버려진 시체 한조각인 날갯죽지를 본다면, 우리더러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으니 벌금을 물어야겠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이 떠올랐기 때문에 이어진 생각들이었다.


오후에 쓰가루(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해협)를 통과하면서 한 마리는 브리지에서 날려 보내어 살아서 육지 쪽으로 날아갔지만, 한 마리는 그냥 남아서 밤을 새우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남아있는 녀석은 힘이 하나도 없고 곧 죽을 것 같아 반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당직 중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있는 삼항사의 열성 때문인지 오히려 조금씩 정신을 차리어 급히 죽을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물새의 종류이니 물로 목욕시키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삼항사가 당직에 지장을 초래받을까 우려도 되지만, 실은 배가 별로 보이지 않는 해역에 들어서 큰 걱정은 안 하고 있다.


제발 좀 더 정신을 차리어 제 스스로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동해 바다의 한 가운데로 점점 들어서고 있으니 이제는 날아갈 육지가 멀어지는, 그것이 문제가 될 듯 싶었다. 매가 지키고 있는 험악한 분위기의 배 위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탈진하여 거의 죽어가던 목숨들이 그래도 행운의 손길을 만나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원기를 북돋우게 되어 한 마리는 살아서 날아갔다는 그 이야기 자체가 어느새 선내의 작은 뉴스 거리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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