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람직스러운 공무원의 모습을 보다
아직 여명의 밝음이 뱃전을 찾아오기도 전에 브리지에 올라가서 멀리 포트 캠브라의 불빛을 보며 저속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한 시간이 가고 최저속으로 다시 삼십 분이 지나니 환하게 동녘 하늘이 붉어오는 때에 맞추어 닻을 바닷물 속으로 투하하였다. 4,781마일의 왕항정(아웃바운드)이 끝난 것이다.
8 SHACKLES IN WATER (8절 수면상까지. 1절의 길이는 27.5미터임)길이의 ANCHOR CHAIN (닻줄)이 신출되어 약 보름간의 항해가 일단락되며 목적 항에 배를 붙들어 놓은 일이 시작된 것이다. 접안 기간의 예정은 3일 오후까지이다. 바람이 잦아들었고, 싱그럽고 환한 하늘은 우리의 가을 하늘보다도 더욱 푸르게 보이며, 바다마저 조용히 수면을 거울 마냥 닦아주어 매끄럽게 만들어 놓으면서도 제 아닌 척 시침 뚝 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든 것이 아주 기분 좋은 그런 상황에 접안 예정도 두 시간여 당겨지어 12시에 시작하련다는 통보를 받고나니 이번 항차 일의 풀림이 아주 좋다는 예감과 함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바람 역시 크게 일어나는 기분이다. 지난 95년 12월초에 방문하고 오늘이 그 후 첫 방문이니 1년 8개월 만의 방문인 셈이다.
12시경 도선사 승선이 17시로 변했다가 그 시간이 너무 늦어 본선의 출 입항은 불가하다며 명일 0630시로 바뀌더니 다시 오늘 16시로 되돌아 왔다. 그렇게 몇 번이나 변하는 가운데 선원들은 낚시에 틈을 내어 도미와 다른 고기들을 잡았는데 씨알이 제법 굵어 올라올 때마다 한 번씩 함성을 지르며 구경꾼과 함께 분위기를 돋운다. 잦은 접안 예정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16시에 도선사가 승선한단다. 우리가 들어갈 자리에서 출항할 배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며 우선 닻을 감아 들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닻을 모두 감아 들이고 움직이기 시작, 항구 입구 2.5마일 정도 접근되었을 때 출항선도 항의 입구 방파제를 힘들게 비틀어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 배에 탔던 파이로트가 내려서 우리 배로 올 예정이니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불안스러워 기관정지까지 해가며 버티다가 드디어 도선사를 태우고 나니 승선 예정보다 18분이 지났지만 실제 도선 구역에서 보다 오히려 더 들어와서 탔기에 어쩌면18분 이상 빠르게 승선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나의 협조가 있었기에 무사히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는 이미 계류삭을 걸어놓고 접안이 끝날 수 있었다고 여기어 좋은 기분으로 수속에 임하는데 마침 검역관이 대리점원과 함께 승선한다.
DERATTING CERTIFICATE(구서 증서)의 갱신을 이야기하니 그 자리에서 구서증서발급을 위한 제반 절차를 밟아준다. GALLEY, 냉장고를 위시한 주부식 창고, 기관실, 공중변소 및 실내상태, 선내병원 상태, 선수창고 등을 둘러보고 난 후 사무실 의자에 앉으며, 배가 새 배라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허나 자신이 봐야 할 곳과 보는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점검 할 곳은 모두 다 면밀하게 살피며 진행하는 걸 지켜보니,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마음은 푸근하게 해준다. 자신의 사무실에 나가 증서를 만들어야 하니 한 시간 전후 시간 뒤 가져다 주겠다면서 배를 떠난다. 그때 시간이 오후 7시 30분 정도 된 시간이었다.
그의 그런 일방적인 약속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문득 오늘이 토요일이지 하는 생각에 우리나라의 공무원과 비교하여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서류를 빨리 갖다 줄수록 나한테는 편하지만, 비교 하는 마음은 너무 잘 해나가는 이들 공무원들이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내일 쯤에 가져다주든가 하여 좀은 흐트러진 뽄새를 보여 우리 보다 별반 다를게 없다는 광경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저녁 여덟시 반이 지나는 시간 주부식 선적을 위해 전선원이 후부갑판에서 크레인을 동원하여 올린 짐들을 등짐으로 나르느라고 한 참 바쁜 때에 그 검역관은 다시 본선을 찾아와서 완결된 증서를 교부해주고 간다.
상황이 그렇기에 고마운 인사치례로 인삼차 한 박스를 고맙다는 선물로 주려했으나 자신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그런 선물은 받을 수 없지만 한국인의 이런 정겨운 미덕을 잘 알고 있기에 뜻 만은 잘 받겠노라고 이야기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민을 위하여 가식 없이 친절하게 일해 주는 현장의 공무원을 자주 만나볼 수 있을까? 나는 있을 수 없다고 단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과문하여 그런 사람-공무원-을 못 본 것이라 여기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어쨌거나 커다란 외항선에의 승하선이 힘들고 위험할 수 있는 어두운 시간에 자신의 임무를 위해 두 번 걸음으로 본선을 찾아준 포트 캠브라의 검역관 아저씨, 이제 불혹의 나이는 훌쩍 넘기고 인생의 완숙기에 들어선 모습으로 보기 좋게 늙어 가는 아저씨, 비록 남의 나라 공무원이지만 나는 친절하고 임무 투철한 공무원의 한사람으로 그를 내 뇌리에 각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사람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다.
기분 좋은 맘으로 집에 전화를 걸다. 오랜만에 건강한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확 풀리는 기쁜 감정이 솟아오른다. 어머니와 큰 애까지 전화를 바꾸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지리산 뱀사골에 큰 물난리가 나서 수백 명이 다치고 죽고 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전해 들으며 문득 죽어야 할 운명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그런 일이 생겼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전화기를 든 채 잠시 내 생각에 몰두하며 고소를 짓다보니 큰 애가 한 말을 못 듣고 넘어갔다. 다시 재우쳐 물으니 이번 나의 귀항시 배에 올라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맘대로 하렴, 하면서,
-야, 그런데 이번에 가는 곳은 삼천포야 삼천포, 말을 던지며 수화기를 내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