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님! 뱀이 선수의 닻줄(앵커 체인)을 타고 배로 올라올 수 있습니까?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는 때에 브리지에 올라가니, 마침 정박 당직근무 중이던 조선족 중국 승조원이 묻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내 얼굴을 보자마자 느닷없이 물어대는 말에 어리둥절하며 반문할 수밖에,
-뱀이 물 위로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선수 쪽으로 가는 걸 봤거든요.
하며 손으로 뱀이 물 위를 달리던 모양을 흉내 내보인다.
그렇게 달려간 뱀이 선수 쪽에서 내려뜨려진 닻줄(앵카 체인)을 타고 배위로 침입이라도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커 보였어?
-이 만큼 굵고, 길 이도이만 하던데요.
팔뚝을 내보이며 양팔을 벌려 일 미터가 넘게 길이를 표시한다. 제법 큰 놈이었던 것 같다.
-색깔은 어떻던가? 좀 누렇지 않았어?
예전에 내가 보았던 바닷 뱀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물으니.
-예, 좀 희구..., 예, 누렇기도 한 거 같았어요.
한다.
-바다뱀들은 모두가 독사라서 겁나는 놈들이지. 그놈한테 물리면 약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꼴까닥 한다고 하더군.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은근히 겁 주는 말을 하며, 그 친구 눈치를 살 핀다.
-그래서 혹시 선수로 올라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 물었던 거예요.
그 친구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뱉어내니 바다뱀의 이야기를 전에 듣기는 했던 모양이다
.
-대가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파도를 타고 앞으로 가던걸요.
그 뱀을 내려다본 이야기를 또 하는데 멀리서 보면서도 일종의 공포감을 가질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찮아! 물에서 사는 놈들이라 배 위로는 절대 올라오지를 않을 거야.
단언하는 식의 대답을 해주며 예전 배를 처음 타던 무렵의 경험을 떠올려본다.
우리나라와 태국을 거의 정기적으로 다니던 배를 타던 때 방콕만(BANGKOKBAR)에서 투묘 중 물 위에 떠있는 녀석들을 보고 호기심에서 건져 올려 빈 커피 병에 담아 놓고 뚜껑 대신 망사를 씌워 놓고 안전하게 살펴보던 적이 있었다.
그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동남아 바다 위에 빠졌을 때 익사해서 죽은 것보다, 바다뱀에 물려 죽은 숫자가 더 많다는 누군가 아는 척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무서운 생각에 보고 있던 뱀이 들은 커피병을 그대로 물에 던져버렸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병과 함께 그 속에 갇혀버린 물뱀이 결국 물에 빠져 익사하게 되겠다는 생각에 괜한 짓을 했다는 작은 후회도 가졌었다.
그때 녀석을 잠자리채 같이 만든 뜰채를 물에 흘려가며 반강제로 넣어 건져낼 때, 녀석은 당당하게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마도 독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그랬던 것 같았다.
윙 브리지로 나가서 뱀이 헤엄쳐 갔다는 우현 선체 옆을 살피려 하니 제법 세게 느껴지는 바람만이 귓가를 시끄럽게 지날 뿐. 물에 떠 보이는 것은 파도의 흰 거품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건 그렇고 올해가 뱀해인 건 알아?
다시 브리지로 들어서며 물으니
-알지요.
하는 대답이 그대로 되돌아온다.
-그렇지 신사년(辛巳年)이지.
라고 하려던 말을 순간적으로 꿀꺽 삼키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이야기가 나오면 올해가 나로서는 두 번째 맞이하는 신사년이란 이야기까지 하게 될 것 같고, 결국 내가 환갑을 맞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테니, 그게 좀은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였다.
-파도가 좀 자면 낚시라도 해서 고기라도 많이 잡아 올릴 텐데.
아직도 20 knots 내외로 기승부리는 바람으로 인해 희끗거리며 선수 쪽에서부터 계속 밀려오고 있는 파도에게 눈길을 주며 말을 돌렸다.
-그렇네요, 이제 들어갈 날도 사흘밖에 안 남았는데, 벌써 나흘 넘어 바람이 계속 쉬지 않고 있네요.
-벌써 그렇게 됐던가? 오늘이 1일이고, 4일에 들어간다니까, 내일, 모레, 글피 이맘 때면 들어가겠군.
꼽아 놓은 손가락을 확인해 보며 이곳 외항에 제법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는 결론에 좀은 지겨운 마음이 슬며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