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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ug 11. 2017

선비 절감을 해 보려 노력했지만

당신네 방법은 쪼잔한 방법이라 말 해도 할 말  없슴


새벽에 회사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는 모습

 선내 전반에 걸친 경비 절감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통신사(장), 란 직책이 없어지면서 선장이 직접 통신운용을 관장하게 된 이후인 요즈음엔 우선 통신비부터 아끼려는 의지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회사로 보내는 제반 보고 문서와 회사로부터 오는 모든 지시 연락사항을 별일이 없는 한, 우리나라 시간으로 하루 한번 밤 10시부터 두 시간 30분 동안의 통신요금 할인이 적용되는 시간을 이용하여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다.

어제는 이곳 시간으로는 밤 11시가 할인 시작 시간이라 그때부터 역시 그렇게 진행하였다. 


 오늘 아침에 출항이라 좀 자 둬야 하는 상황이지만, 할인 시간 되기를 기다려 밤 11시가 지나자마자 E-MAIL을 열어 어떤 공문이 왔는가를 확인하고 보내는 과정에서 어느덧 밤 12시는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받아 든 공문 중에 내가 보냈던 3월 경리 보고서에서 틀리게 기장 한 숫자를 고쳐서 보내 달라는 메일이 세 통 들어 있었고, 같은 내용을 팩스로 보내온 것 역시 한 통 들어와 있었다. 지적한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보니 내가 숫자 기입을 잘못한 것이 맞아서 새로 정정한 문건을 이메일로 발송하였다. 


 내가 이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잠도 못 자고 기다려서 통신을 하는 이유가 도표 등과 같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파일을 보내고, 회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여러 가지의 통신 사항들을 싸게 받기 위해서 이건만, 회사는 한 가지 바쁘다는 이유로 한 문건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보내고 심지어는 팩스로도 보내는 방법을 서슴없이 실행하고 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현장 사람들이 부단히 아껴가며 열심히 노력해서 경비절감을 좀 했다 치더라도 이렇게 회사에서 아낌없이 통신비를 쓰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하는 일에 작은 의문감을 아니 가질 수가 없어 보인다. 

가능한 하루 한번, 그것도 할인시간대에 이메일을 열어보는 방법을 택하도록 하여서 우리 배에서는 경비 절감을 했으니 되긴 했지만, 회사의 담당자는 내가 이메일을 일찍 열어보지 않은 관계로 답신이 들어오지 않는데 대해서 초조감을 느꼈는지 독촉하는 성질의 이메일과 팩스까지 보낸 것이다. 

결국 우리 배가 아무리 절감했어도 회사 전체적인 지출로 통신 경비 항목을 따진다면 과도하게 사용한 꼴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어차피 통신이란 시간을 다투는 화급한 일을 다룰 때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어쩔 수 없이 당장이라도 사용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현재 회사 사무실의 사정을 잘 모르는 내 입장이긴 해도 같은 아이템으로 네 번씩이나 독촉하는 연락을 한 것은 좀 지나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어 유감스럽다. 


 하기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사자로서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발뺌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물러서서 숨을 돌리며,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라도 떠 올렸으면 하고 바라본다. 내가 하는 일을 생색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효과만을 노리고 행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비절감을 생각하고 운용하는 나의 업무처리 방법이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퇴색되는 것 같아 섭섭한 것이다. 


 얼마 안 있어 현장을 떠나야 하는 시점에 와 있지만 현역을 떠난다고 모두 끝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떤 면에서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도 아니면 나는 현재에야 별 볼일이 없는 우리 회사의 주주(株主)지만 그래도 주식회사의 주주라는 점이 앞으로 진가를 발휘할 날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날이 빨리 오라고 학수고대하는 심정이 내가 본선의 경비를 조금이라도 축소시켜 보고 싶어 하는 진정한 이유라고 선언하면 남들은 웃을까? 


 이제껏 40년 가까운 세월을 일해 오면서 내 자리와 위치에 대해 떨떠름하니 느껴질 때가 종종 있어 왔는데, 어느새 쫓기듯 떠나야 하는 마당이 되어오니 이제는 진짜 주인이고 싶은 소박한 마음이 그런 꿈을 꾸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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