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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ug 20. 2017

어마! 뜨거라

뜨거워진 갑판에 깜짝 놀라다


선실내부 통로


 밤새 당직자가 수신하여 보고해 준 이메일에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나 알아보려고 새벽 한 시 반에 깨어나서 방문 앞에 걸어넣어준 수신 서류를 살펴본다. 


 무선검사 관계의 수리 신청서를 제출해 달라는 공문과 경리 보고에서 틀려진 상황을 검사하여 알려달라는 담당자의 사신이 와있어 도대체 왜 이리 자주 경리 보고의 잘못을 지적당하나 싶은 마음에 잠잘 것을 포기하고 물어 온 사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첨부된 증빙서류와 다르다는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니 계산 내역을 첫 페이지로 옮겨 놓는 과정에서 30원이 틀리게 적힌 잘못을 발견, 그것을 수정하여 2월 것과 그에 기초해서 계산된 3월분의 30원 모자람을 보충 정정해서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잠잘 시간을 놓치고 말아 그대로 운동하는 시간으로 연결하려고 차림새를 고쳐 우선 브리지로 올라갔다. 

무선검사 관계 공문은 당직 중인 일항사에게 전해주어 조치할 수 있도록 지시하고, 운동을 시작하려고 윙 브리지 쪽 밖으로 나오니 코끝에 매캐하니 고무 타는 냄새가 스며들어 온다. 


-일항사! 여기 나와 봐라, 고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데? 

-예, 무슨 냄새가 나긴 나네요. 기관실에서 소각기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윙 브리지 데크로 나온 일항사가 코를 흥흥거려 냄새를 맡아보고 대답한다. 

-요새 소각기 사용이 잘되는 모양이지? 

나도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껴 바빠진 소각기 성능이 괜찮아진 모양이라는 바람직한 결과로 치부하며 그대로 주갑판을 향해 노천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의 갑판 선회 방향은 아직 위도가 남위 3도 정도 되는 적도 이남인 남반부 지역이니, 시침이 도는 방향으로 돌기로 한 내 방식대로 하기로 한다. 


 내 방식이란 의미는, 적도를 중심으로 북반부에서는 시곗바늘 도는 반대방향으로 돌고 남반부에서는 시곗바늘 도는 방향과 같이 움직이는 것인데, 이는 태풍(저기압 포함)이 생겼을 때 그 중심부를 향해 남, 북반부에서 각각 바람이 불어 드는 방향이 그렇게 다르게 되어 있는 점을 따르려는 일종의 자연에 순응하고 싶은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직 남반부를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오른쪽 외부통로 계단을 통해 메인 갑판으로 내려간 후, 오른쪽(뒤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여 선체 가장자리 핸드레일 안쪽을 따라 선미부를 통과하여 좌현 갑판 쪽으로 가기로 한다. 

선미부 중앙 선상에 설치된 선미등을 왼쪽으로 지나치며 본격적으로 좌현 갑판 쪽으로 들어서는데 아까 브리지에서 맡았던 고무 타는 냄새가 좀 더 짙어져서 바람결에 실려 온다. 


 이제 앞쪽으로 향해진 눈앞에는 각종 에어벤트가 도열하듯 서 있는 곳을 지나야 하는데, 그중의 하나에서 새하얀 증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얼른 가까이 다가서니 갑자기 발이 닿은 갑판에서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와 아랫도리를 후끈하게 만들어 준다. 


  혹시 그 갑판 밑의 기관실에 불이라도 난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은 <어마 뜨거라!>라는 단어가 이 상황에 정말로 적절한 걸 깨닫게 해주듯 어느새 내 몸은 뜀박질 자세를 취한 채 브리지를 향해 부리나케 달리고 있다. 


 5층 높이의 브리지까지의 외부 계단을 숨이 턱에 차게 헐떡이며 단숨에 올라가서는, 

-

-빨리 기관실로 전화해서 좌현 POOP DECK의 에어벤트에서 증기가 나오고 갑판이 뜨겁게 달궈졌다고 이야기해 줘, 그리고 무엇 때문인가 빨리 알아내서 보고하라고 전해.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를 쏟아내는 내 기세에 덩달아 흥분하고 바빠진 일항사가 기관실로 전화부터 건다. 


 수화기를 받아 들은 일기사에게 이야기를 전하는데, 기름이 갑판으로 새어 나온다는 식으로 통보하는 걸 듣고, 그게 아니라 증기가 에어벤트로 많이 나오며 갑판이 매우 뜨겁다는 걸로 바로 잡아 전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이어지는 통화를 들어가며 유추해보니 기관실에서는 그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을 알고 있으며, 기름과 섞여있는 물을 증발시키기 위해 그런 것을 한데 모아놓은 탱크에 열을 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에어벤트로 스팀이 나오고 있으며 주위 갑판이 뜨겁게 달궈져 있으니 우선 그걸 식히는 조치부터 하고 결과를 브리지로 보고해 줘. 

전화기를 빼앗듯이 바꿔 들고 선, 우선 취할 조치부터 다시 명령한 후 전화를 끊었다. 


 한 5분이 지났을까 브리지의 전화벨이 울린다. 얼른 집어 드니 일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뜨겁게 달궈진 갑판을 직접 확인한 후 위험한 상황임을 인식하여서 계속 공급하던 스팀을 잠가 주고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게 조처를 했다고 보고를 하여 온다. 

-이제 괜찮은 거지? 

확인하듯 반문하여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 전화를 천천히 끊었다. 


 갑판 위에 물이라도 뿌려서 더욱 빨리 식히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으로 일단락 지어 놓은 후 미뤄졌던 운동을 위해 갑판으로 내려가 다시 선수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갑판을 돌아가는 운동으로 계속하게 되면 그 뜨거운 곳을 통과할 때마다 기분 언짢은 심정에 부하들을 속으로 욕하는 과정이 반복될 것 같아 그냥 선수루를 뺑뺑이 도는 (선수루를 다섯 바퀴 크게 돌면 전체 갑판 한번 도는 것과 거의 같은 발걸음 숫자이므로) 운동 방법으로 바꾸기로 한다. 


 선수루에 오르니 선수의 양쪽으로 4~5 마일쯤 되는 곳에서 이 해역에서는 거의 만나 보기가 힘든 어선이 각각 한 척씩 불빛으로 보인다. 

어선의 불빛은 선수루를 맴돌며 보는 내 눈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서서히 뒤로 멀어져 갔고 그 사이에 내 운동량도 반쯤 채워져 가고 있다. 


 처음 갑판으로 나섰을 때에는 달빛이 비치는 상황이었건만 어느 순간부터 슬그머니 하늘의 별빛부터 가리고 나타났던 구름 중에 유난히 검은 비구름이 바람을 몰고 닥쳐 든다. 순식간에 억수 같은 비가 휘몰아쳐 온다. 

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흠뻑 젖어들도록 맞아야 했지만, 마음속에 께름칙하니 남아있던 후부 갑판의 달궈진 부분을 잘 식혀줄 수 있겠다는 좋은 청량제로 받아주는 마음이, 어제 맞았던 비와는 완연히 다른 시원한 감흥 되어 맞이해준다. 


 그렇게 스콜(SQUALL)이 지나가 버린 후부 갑판으로 걸음을 옮겨가 살펴보니,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문제의 갑판은 뽀송뽀송하니 물기를 말려주고 있지만, 그 옆의 열을 받지 않았던 구역으로 이어진 철판 쪽은 줄을 그어 놓은 듯 푹 젖은 상태의 이음새를 보여주고 있다. 


-배에 불을 내려고 작정한 것은 아닐 테지만, 새벽에 그 광경을 보고 꽤나 놀랬었어! 

아침 식탁에서 농담 비슷이 말을 꺼낸 나의 의도를 기관장은 잘 알아들었는지 기관실에 전화를 걸어 그 후의 상황을 알아보더니 추후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준다. 


 그 일은 기관실의 스럿지(Sludge)와 섞인 물을 제거(증발)시켜 좀 더 적은 양의 스럿지로 양육시켜서 회사의 경비를 아끼려는 마음에서, 현재는 쓰지 않고 있는 IFO TANK를 이용하면서 생겼던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위험한 일을 진행한 마음가짐들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너무 등한시하거나 무시한 때문에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니 앞으로는 비슷한 일을 행할 때, 좀 더 조심하도록 격려하며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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