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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ug 19. 2017

빗속의 운동

비 맞으면서도 운동은 계속하고


 새벽 운동을 한참 하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예정 운동량의 반쯤을 해 나가고 있던 중인데 선수 쪽 하늘에 시꺼멓게 도사리고 있던 어둠이 그냥 어둠이 아니라 비를 머금고 기다리고 있던 구름이 만든 어둠이었던 것이다. 


 선미 쪽이 가까운 마린 하우스(선내 거주구역) 쪽에 도착해 있어서 선수루 쪽인 앞으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비가 개기를 기다려주면 괜찮을 텐데, 마침 운동은 함께 하지만,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H 씨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는 오기가 발동하여 그냥 비가 흩날리고 있는 앞쪽을 향해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갑판의 중간쯤 되는 4번 창쯤 미칠 무렵 거세지는 빗줄기가 순식간에 옷을 후줄근하니 젖어들게 만들어, 진짜 어둠이 없는 곳이라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선수루 밑에까지 쉬엄쉬엄 가서 옆으로 치는 빗줄기를 피해 선 다음, 웃옷을 벗어 물기를 떨어 내기로 작정했다. 


 완전히 세탁하려고 물에 담갔던 빨래 감을 건지듯 벗어 들며 쥐어짜 본다. 

물이 뚝뚝 흐르는 옷을 차분히 비틀어 물기를 걷어내고 다시 입으니 무겁게 어깨를 짓눌러 대던 감각과 몸에 척 달라붙던 이상한 감촉에선 그래도 벗어나게 해준다. 


 열대 역의 솔로몬 해역 마지막 입구 달빛마저 어둠에 묻혀, 주위에 있을 섬 그늘도 보이지 않는 속에 빗줄기는 계속되고 있다. 

번쩍하니 단발성 번개가 한번 비치며 이어서 들려 올 천둥소리에 신경을 맞추고 있었건만 아무런 소리도 또 다른 번개도 치지 않고 있다. 

빗줄기가 많이 약해진 것 같아 하늘을 쳐다보니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치는 감각으론 찾아지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어둠뿐인 속에서 갑자기 꾸르릉! 하는 약한 천둥소리가 울려온다. 아까 한참 전에 쳤던 마른번개가 가로 늦게 보내준 우레 소리가 틀림없다. 


 그 우레가 나를 찾아 떠나 온 곳이 우리 배와는 까마득하니 떨어져 있는 먼 곳이 었음을 알게 해주는 그 늦은 소리로 인해, 혹시나 우리 배 가까운 곳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때리는 일이 발생하여 나의 운동 길에 벼락으로 내려지는 건 아닌가 하던 우스꽝스러운 공포를 어느 정도 가시게 해준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간혹 느껴지는 빗방울을 무시하고 선수루로 올라서서 운동을 계속하려는 의지를 가다듬으며, 선미 쪽 거주구역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약 2백 미터 뒤쪽이 되는 마린 하우스 양현에 켜준 현등 중의 빨간색 좌현 등불이 유난히 눈 안에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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