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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ug 21. 2017

CCTV

일거수일투족을 들어내 보인다.

VDR(선박의 블랙박스)

 글쎄 말로만 듣던 상황이 그 회사에서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한낮이 되어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배를 보니 아무래도 H상선의 배 같은 데...라고 짐작을 하며 더욱 가까워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짐작했던 대로 H상선의 <H 아일랜드>라는 배로 판명되었다. 


  큰 수리를 이루려고 드라이독에라도 다녀왔는지, 산뜻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달리고 있는데 이 모든 움직이는 파워를 결집시켜 보여주고 있는 선미 부에선 프로펠러의 회전이 힘차게 와류를 쏟아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에는 스피드도 제법 이끌어 낼 수 있는 힘도 실려 있어 아무래도 드라이 도킹으로 깨끗해진 선체와 오버올을 한 기관들의 작동상태임을 추측함에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마침 당직 중이던 2 항사에게, 

-저 배에서 부르지 않던가? 

 하고 물으니, 

-아까 오전 중에 3 항사가 통화를 한 모양인데, 저 배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답니다. 

 역시 내가 브리지에 올라오기 전에 있었던 소식까지 함께 전하는 대답을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상대선에선 당직 중의 모든 행동이 그대로 녹화되는 형편이므로, 쓸데없는 일로 보일 수 있는 외부와의 통화는 함부로 해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CCTV? 

 몇 년 전이었던가? 해운 뉴스는, 그 설비가 해운계에서는 마치 항공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수준의 이기로 이용할 방안을 세우고 있으며, 앞서 나가는 회사 중 한 곳인 당시 H상선에서 몇 척의 자사 선박에 대해 시험적으로 그 기기를 설치하던 중임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용해 본 후, 적합 판정이 나면 몇 년 안에 순차적으로 전선대에 탑재하겠다고 했다는 바로 그 장비를 말함이 아닌가? 


 선박 안전을 위해 설비하는 장치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선원들이 당직을 제대로 잘 서고 있는가를 감시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근무 중의 브리지 내부의 모든 모습이 꼼짝없이 녹화되어 유사시 증거물로 채택될 수 있다는 의미가 그 장비의 설치에 내포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사생활조차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미묘하고 착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그 회사의 모든 배들에 CCTV가 설치되어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죄어들어 오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 배 탈 맛이 나겠어? 하는 물음도 선원들 서로 간에 우물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것이 현실의 추세로 내 앞에 다가서며 압박을 가해오는 형편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억울(?)할 따름이다. 


 그러나 선원들의 당직 상태를 감시 감독하기 위한 처사라는 항의(?)는 작은 한 부류의 이유가 될 뿐, 그 일을 진행하는 가장 큰 의미는 해상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을 정확히 기록하여 해난 사고 등이 발생하였을 때, 차후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것을 가장 큰 이슈로 꼽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지나치는 그 배를 보며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들의 그런 상황을 이해하여 그냥 지나쳐주기로 한다. 


-P상선 선박, 감도 있습니까? 

갑자기 VHF 전화가 흘러 내는 음성이 들려오는데 전화를 걸 만한 배는 문제의 그 배 밖에 없다. 


-예, 감도 있습니다. 

얼른 응답하고 나서니,

-예, H상선의 H아일랜드입니다. 찬넬 69번으로 나오시죠. 

-예, 찬낼 69번. 

 하며 69 찬넬을 열어 맞추어 준다. 


 예상외로 그 배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의아해하며 응답했는데, 전화 걸어온 목적이 이번에 뉴캐슬을 찾아가는데, 기한이 다 되어 받게 될 PSC 검사에 대비하여 사전 정보를 얻어 보려고 연락을 취한 것이라니 전화를 걸은 그 심정에 이해가 간다. 


 설사 CCTV로 녹화가 되더라도 그런 일을 위해 타선과 통화를 했다는 것이니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싶어 그가 원하는 정보를 시원스레 주려고 했지만, 우리 배는 이번 뉴캐슬 기항 시에 PSC 검사를 안 받았으니, 특별하게 해줄 말은 없고 그저 일반적인 사항을 아는 대로 자세히 알려주는 거로 대신했다. 


-예, 안전항해를 바랍니다. 

통화를 끝내며 정중히 인사를 보내는 마음은 행여 그들의 CCTV에 음성 녹화라도 멋지게 들리게 해주십사~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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