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일로 하게 되었다는 불만.
지난 몇 년 간에 걸쳐 종종 이어진 탱커선의 좌초, 충돌, 침몰로 인한 기름오염사고가 지구 상 해양과 그에 인접한 육지 그리고 바다의 생태계까지 파괴하는 끔찍한 일로 대두되면서, 요즈음 해상에서의 오염방지는 모두가 조심에 조심을 하는 세계적인 큰 이슈로 떠올라 있다.
배를 타면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오염 방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분위기가 잡혀 있어, 배를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마치 기름오염방지를 하려는 데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도 될 만큼, 모든 나라에서는 자신의 나라에 기항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유류 취급을 일일이 간섭하고 점검하여 규정에 어긋나면 벌금형은 물론 징역형도 불사하여 처벌하고 있다.
사실 일반 선박에서 기름 취급은 기관부 소관이지만(탱커에서의 화물유는 일항사의 소관) 선내에서 발생한 모든 사고의 최종 책임은 선장에게 있으니, 선장이란 직책은 항시 기름사고 방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사는 고달픈 생활이기도 하다.
새벽 4시 반. 점점 빨라지는 해돋이 시간으로 인해 이미 동녘 수평선 위로는 동이 트려는 여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직 어둠에 파묻혀 있는 구조물에 가려진 갑판의 후미진 곳을 걸어가는 발걸음은 미처 어둠에 익지 못한 눈썰미 때문에 미적거리어 빠를 수가 없다.
좌현 쪽의 에어-벤트가 죽순처럼 서있는 사이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가는데, 내디딘 신발창에 와 닿는 감촉이 다음 발자국으로 옮기는 순간 미끈둥하니 미끄러지려는 상태로 전달되어 와서 몸의 균형을 잡느라 잠깐 휘청하니 움직였다.
선실 하부의 코퍼댐(COFFERDAM 주*1)에서 흘러나온 뻘을 밟았을 거라고 여겨지어 한 발자국 더 내디뎌 마른 갑판에 묻었던 뻘을 닦아내듯 나가니 다음 발자국부터는 깨끗이 닦인 기분이 들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고 운동을 계속했다.
그렇게 운동의 반을 채워갈 무렵, 날이 새기 시작하면서 그곳을 지나는데 누군가 톱밥을 뿌려 놓은 게 보인다.
기름기가 갑판으로 새어 나온 것으로 아까 내가 밟고 지난 것이 뻘 흙이 아니라 기름기였던 것이다.
보기에도 끔찍한 검고 윤택이 흐르는 기름의 흘러나온 모습에다 톱밥을 뿌려준 사람은 나보다 늦게 운동하러 나온 갑판부의 H 씨였다.
나는 감각으론 알았지만 눈으로는 확인을 하지 않고 처음 머리에 떠오른 생각대로 뻘로 단정 짓고 내 할 일을 해 나갈 때 H 씨는 눈으로 보이는 시점에 그곳을 지나게 되어 기름으로 인한 오염방지를 위한 조치를 즉각적으로 취했던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없었던 코퍼댐에서 기름이 새어 나오는 일이 생겼단 말인가?
사정을 알아본 결과 어제 오후에 이미 그곳에서 기름이 새어 나오는 낌새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름이 샌 것이야 그곳을 통과하는 오일 파이프의 파공 때문이겠지만 그동안 새지 않던 기름이 갑자기 새는 것도 이상하고 또 기름의 종류도 어떤 기름인지 의심이 갔다.
결국 많이 생긴 스러지를 사용하지 않던 IFO 탱크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파이프가 낡아 있어서 작은 파공이 된 곳 있어 결국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기름이 새어 나온 모양이다.
그런 상황을 어제 오후에 알았으면 청소 작업이야 오늘 하려 했어도, 최소한 기름의 더 이상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는 해 두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밤새 비라도 내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놔두고 있었는지 담당자들의 강심장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아무래도 그런 상황에 화가 나서, 따지려는 기분이 들어 아직 기상을 안 해서 방문이 닫혀 있는 기관장 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에서 바로 깨어난 듯한 목쉰 소리의 응답을 들으며, 하나 말은 고분고분하니 따져서 그 사정을 어제 알았느냐고 물으니까 그렇단다.
그랬으면서도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었어? 하는 비난의 심정을 다독거리며 어찌할 것인지를 물으니 오늘 중으로 그 안의 기름을 다 닦아내고 새는 부위에는 시멘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알았다고 이야기하며 기름이 새어 나와 스커퍼(SCUPPER)에도 조금 흘러들었기에(선외 유출?) 나중에 현측으로 내려가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란 이야기를 해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아침의 미팅은 자연스레 코퍼댐의 기름기 제거 작업이 주가 되어 토의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들 하지 않아도 될 작업에 동원된 것이 마냥 기분 나쁜 표정들이다.
사실 이런 작업이야 전 승조원들이 모두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결국 갑판부가 주가 되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전 승조원들 중 항해 당직자를 제외한 사람들로 작업을 하게 될 경우, 기관부원 들이야 항해 당직에서 빼어 다른 일을 하지 못하므로 참석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지만, 갑판부의 타수들은 항해당직에서 빼어내 일반 데이 워크를 할 수 있으니 특별작업에 투입이 되는 것은 통상 일반 일과팀을 제외하고는 그들일 뿐이다.
말은 안 하지만, 안 해도 되었을 이 작업을 하게 만든 것이 기관 부라는 마음들을 품고 있는 갑판 부원들로서는 표정으로 그런 불편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아침에 나로부터 질책성 전화를 받았던 기관장도 기상하여 작업복 차림으로 갑판부의 미팅 장소에 나타나서 참석하고 있다.
-좁은 공간이고 기름이 깔려 있어 작업복을 입고 들어가려면 제일 나쁜 작업복으로 갈아입어야 될 거요.
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 작업할 갑판 부원들에게 주의 사항을 주는 기관장에게,
-기관장님은 안 들어가 보세요?
묻는 갑판장의 말투에서 약간의 가시가 돋은 느낌을 받는다.
-나?, 나는 안 들어갈 거요.
대답하는 기관장의 심정도 불쾌한 심정을 내 비치고 있다.
-그래도 한 번은 들어가 봐야 하지 않아요?
한 번 더 이야기를 끌려는 갑판장의 말을 무시하고 기관장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이란 느낌을 받고 있는데, 일항사가 툴박스 미팅의 마지막 단계인 지적확인 순서로 넘겨버리기에 그냥 따라가기로 한다.
안전 작업을 위한 주의 사항을 짚어내어 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사고 없는 작업으로 이끌자는 염원을 담고 구호를 외쳐 소리친다.
숨쉬기에 곤란을 느끼면 즉시 철수하라는 준 밀폐구역에서의 작업으로 간주하라는 의도도 전달되어 있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너무 밀고 들어가 몸이 좁은 틈새에 꼭 끼이게 되면 안 되니 그를 조심하자는 의미까지 덧붙여 강조한,
-오늘의 원 포인트는 ‘머리 조심 좋아!’입니다.
임시 팀장을 맡은 조기장이 선창 한다. 나도 소리쳐서 그 구호를 같이 세 번에 걸쳐 외쳤다.
-이제 입항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우리 배도 구석구석 깨끗이 化粧시켜주는 의미로 이번 청소를 해주는 것이라 여기고 웃으며 작업에 참여합시다. 그리고 아무런 사고 없이 끝냅시다.
이런 말을 꼭 부연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蛇足의 말이 될 수도 있기에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접어두기로 한다.
그러나 정말로 부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심정을 가지고 그들을 동료로 대하는 너그러움을 간직한 넉넉한 소유자라면 내가 나서기보다는 기관장이 스스로 먼저 앞장서서,
-제깐에는 회사를 위하여 물과 많이 섞인 슬러지(SLUDGE, 기름의 찌꺼기)의 양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런 일이 생겨 여러분들을 귀찮게 만들었군요.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깨끗이 청소해지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죄송스럽다는 말 씀 드립니다.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해서 그들의 힘들고 불편해하는 불평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모두가 들어가서 작업을 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기름이 흘러넘쳐 있는 모양으로 오늘 안에 끝나 기는 힘들 걸로 예측이 된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엊저녁 스러지가 새어 나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그 정보가 당직 후임자들에게 제대로 인계가 되지 않아 모두에게 공유되지 못해서 한밤중에 다시 펌프를 작동시켰다는 의심하는 불신이 코퍼댐 탱크 안을 기면서 청소하는 작업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모양이다.
오늘 저녁에는 특별한 배려를 코퍼댐(COFFERDAM) 청소를 한 후 목욕하고 난 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주*1 코퍼댐(COFFERDAM): 기름이나 물, 가스등이 한쪽 구획에서 다른 쪽 구획으로 직접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격벽 사이에 칸막이 격벽 구획을 설비하여 만들어 준 완충 공간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