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처음 갖는 경험이니
선박 승선 생활을 하다 보면 오랫동안 외국항 간을 떠 돌다가 국내에 귀항하게 되어 오랜만에 집을 칮이기게 되었을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이때 오래간만에 찾아가야 할 집에서 가족들이 모두 이사를 하여 새로 이사 간 집을 찾아가야 하는 경우, 혼자서 주소를 들고 처음 찾아가는 일은 묘한 감흥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다.
금항 본선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먼저 살던 동네 부근도 아닌, 생판 처음 가보는 지방으로 이사를 갔기에 집 주소를 들고 처음으로 찾아가야 하는 황당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며 웃는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처음 만나야 하는 집을 찾아 나서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일기사의 그런 우스개 넋두리를 들으며, 그래도 큰 집으로 이사하는 좋은 일이니 축하한다며 우리 동료 모두는 덩달아 웃어주며,
-집 없는 천사가 되였었네!
하는 농담으로 축하의 이야기로 되돌려 주었다.
나 역시 지금 사는 집으로 첫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찾아가는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배로 나를 찾아와 같이 동행하며 귀가하였기에, 집 없는 천사가 아니라 새집 생긴 천사의 경험을 했다는 게 맞겠다.
사실 당시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승선 중인 나를 배제한 상황에서 내 이름으로 집을 계약하였던 경우로서. 변두리 개발지역의 새로 지은 집을 사게 되었는데, 계약을 하기까지는 내 발이 뛰지 못했기에, 모두 다 아내가 벌려 놓은 일로서 마지막으로 도장 찍으러 찾아가 만나면서, 이 집이 내 집이 된다는 일이 그렇게 나 신이 나고 기뻤던 상황은 내 생애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하나로 남아있다.
따라서 그렇게 만들어 준 아내의 일 처리가 고맙기까지 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반면에는 그 후부터는 어지간히 귀찮은 일이나 힘든 일은 모두 아내가 해주는 것에 길들여져 버리게 된 나 자신을 보게 되어 쓴웃음을 머금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식의 첫 만남이란 비슷한 형편의 일이 큰 애를 처음 보던 날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 기억은 집이 생기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너무나 큰 기쁨을 얼떨떨함 속에 나에게 주어졌고 지금도 생생한 어제 같은 일로 남아 있다.
69년도 그해 내 28세의 생일날 배가 부산에 입항하였을 때, 바로 이틀 전에 첫 애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붕 떠있는 듯 한 심정으로 집을 찾아갔었다.
후끈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기를 보듬고 있던 아내에게서 조심스레 건네받은 녀석을 들여다보며, 새빨간 피부에 얼굴이 무척이나 길어 보여 은근히 걱정스러운 마음도 품었었는데,
-그놈 참 잘 생겼지?
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예?!
엉겁결에 대답하며, 아기들은 다 이런 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초산이라 좀 힘들어 아이를 기계로 빼내느라 얼굴이 좀 길어졌다며 곧 제대로 돌아갈 것이란 이야기까지 귓등을 타고 들어오는데, 눈을 뜨고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는 녀석을 찬찬히 훑어보며 제 엄마 닮은 눈이 진짜로 크고 예쁘구나! 하는 감탄의 염이 절로 곁들여 떠오르고 있었다.
-아! 이제는 나도 애 아버지가 되었구나!
하는 감회와 알 수 없는 뭉클하는 기운이 가슴으로 치솟아 올라와 내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싸한 감동이 물결치듯 솟구쳐 찾아왔었다.
아울러 어떤 결심을 다지며, 무언가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신비한 느낌에 빠져 들었었는데, 이번에 셋집을 떠나 이사를 가서 자신의 문패가 달린 새집을 처음으로 찾아가게 된 일기사도 그 비슷한 감흥으로 자신이 벌어서 장만하게 된 집을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