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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04. 2017

광양을 출항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주는 대화.


 5박 6일간의 광양에서의 머무름도 어찌 지났는지 모르게 마음 바쁘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 다시 출항 길로 들어선 아침이다. 


 도선사도 내렸으니 슬슬 속력을 올려서 앞으로 다가 온 보름간의 항해를 시작할 때에 맞추어 RUNG UP ENG.(장기 항해를 위해 기관을 올릴 만큼 다 올려준 상태로 더 이상 기관의 증, 감속을 사용하지 않고 최대의 일정한 속력을 유지한다는 뜻)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건만, 마침 울린 전화벨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기관을 세워서 수리를 한 후에 속항을 하자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디를 수리해야 하려는 겁니까? 

하는 물음에, 

-F.O 고압 파이프가 또 터져 바꿔야 하겠습니다. 

라는 대답이 올라온다. 

-아직 좁은 해역을 못 빠져나왔으니 좀 더 나가서 해도 되겠지요? 

-예, 새어 나오는 기름양이 적어 통에 받아 다시 주워 담고 있으니, 한두 시간 넓은 곳으로 나가는 건 괜찮습니다.

 

 통화를 끝내며 이번에도 또 세워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건가? 하는 좀 울적한 기분이 든다. 

그런 마음을 풀어내려고 아직은 통화가 가능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아내의 전화번호를 돌려 본다. 

아내는 우리 배를 떠나보내고 자기 동생과 함께 한나절을 지내고 난 후, 집으로 간다고 했었기에 아직은 광양을 떠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핸드폰 특유의 잡음에 섞여 아내의 응답이 들리는데 점심식사를 하려고 옥곡을 찾아가서 메기매운탕을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란다. 

-누구 하고 갔는데? 

누구하고 갔는가를 뻔히 짐작하면서도 말을 잇기 위해 묻는다. 

-정아네(처제)와 옥곡 아줌마랑, 그 집 남편 그리고 잘 모르는 한 사람이 더 있어요. 

예상하고 있던 대로 처제와 함께 옥곡 집 차를 타고 간 것이다. 엊그제 구례 갔을 때 동행해 주었던 바로 그 차와 그 사람을 말함이다. 

옥곡에 있다는 그 사람도 실은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명퇴를 한 후, 옥곡에서 노후를 살겠다고 정하고 찾아온 사람이다. 

-그래 점심 맛있게 들고 구경 잘 해 두어요. 혹시 이쪽으로 이사 오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알았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어요? 

-난 지금 여수 앞바다를 빠져나가고 있어요. 

-그렇군요. 

아내가 자주 쓰는 독특한 응수의 말이다. 

-자, 이제 전화를 끊겠어요. 그럼 집에 잘 가시고. 나도 잘 갔다 오겠어요. 

-예, 당신도 잘 다녀오세요. 


 약간의 불편한 심기에서 걸었던 전화이지만, 이 정도의 대화로도 원하던 이상으로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다.

그러기에 기관의 작은 고장으로 출항이 좀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아내와의 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걱정거리로 남아 서로의 마음에 앙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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