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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05. 2017

감패(甘▩)-흡족하게 오는 감우(甘雨)

가믐보고 떠난 눈에 드는 빗줄기

윙브리지에 내리는 비


 일본 규슈의 서쪽 도카라 해협을 빠져나오는 우리 배를 만나주던 빗줄기가 제법 강해지는 비로 변해가고 있다. 광양을 떠날 무렵 심한 가뭄 현상 때문에 비가 와야 하는데 하고 바라던 내 마음을 헤아려준 때문일까?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는 빗줄기였는데, 윙 브리지를 돌면서 바쁜 걸음걸이를 셈하고 있는 얼굴에 어느새 후드득 거리며 뿌리쳐 줄만큼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는 것이다. 


 출항을 하기 전 돌아본 구례나 하동의 섬진강은 너무 바짝 말라서 가뭄을 실감 나게 했었다.

오늘쯤 이면 비가 와서 해갈을 해줄 것이란 기상 방송을 들으며, 

-비야! 제발 그렇게 내려 주렴아! 

은근히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섬진강의 너무 넓어져 있는 백사장을 생각하며 그런 기원을 했었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려고 내리는 감패(甘▩)인 모양이다. 

그래 지금쯤 섬진강에도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겠지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바다 위에서 비가 이렇게 오는 것이 뱃사람의 마음에는 결코 반가운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맑은 날씨를 숨겨주어 음울한 기운을 퍼지게 하기도 하는 게 비 오는 날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구질구질한 빗줄기에,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한 듯 시큰둥한 마음이 들며 아무래도 분위기를 저조하게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뭄 때 같이 직접적인 비를 기다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가 가지는 이런 음울성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약간의 거부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배도 달리고 비구름도 거칠 것 없이 달리고 있는 이 바다 위에서는, 육상에서와는 달리 태풍이나 커다란 저기압이 함께하는 상황에서의 심한 바람과 함께하는 비만 아니라면, 얼마 안 가서 스스로 그쳐주는 국지적인 비이므로 너무 우울하게만 생각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며칠 전의 섬진강을 떠 올리고, 비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나라의 농민과 이웃을 기억해내며, 이 비는 그와 연결된 바라고 있던 고마운 비라고 추켜 세우며, 잠깐 우울해지려던 마음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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