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Sep 27. 2017

아버지 둘째입니다.

주위의 감원 선풍에 휩싸인 둘째의 소식을 들으며

입항중이던 호주 뉴캐슬 항


 막내가 외출 나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 앞에서 저녁때 만나기로 했죠. 뭐 맛있는 것을 사줄까 고민 중입니다. 군바리 입에는 뭐든 맛있겠죠. ^^* 

 비가 내려요. 가뭄이 계속이라 오려면 좀 팍팍 쏟아져야 하는데 여전히 안개비처럼 내리고 있습니다. 메마른 땅이 감질낼 정도로요. 


 어제, 60여 명 직원인 회사에서 18명을 정리한다는 방침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피의 월요일'이었죠.

저는, 그리고 저희 팀은 그 무시무시한 정리에서 한 명도 걸리지 않았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그렇게 떠나는 모습을 보려니 정말. 이런 걸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건지. 내 친구 K는 마침 동료였던 친구가 자살하는 비극까지 겪고 제정신이 아니고요. 

같은 팀에서 가장 아끼는 후배가 잘리고, 동기가 죽는.. 그런 일을 겪으니 그럴 만도 하죠. 이런 비극들이 이제 그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우울한 화요일이네요. 


 아. 작은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으로 호주에 머물고 계세요. 제가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073831 XXXX <-요게 전화번호래요. 

브리스베인 Good Earth. 

아마도 굿어스는 머무시는 호텔 이름 같네요. 아버지, 연락 한 번 해보세요. 

다시 메일 띄울 때는 좀 기쁜 일로 보내드릴게요. 

우울한 둘째가 보냅니다.


----   ----   ----


 회사에 감원 선풍이 휘몰아쳐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이 그냥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대책도 할 일도 없는 자신의 무기력에 자탄하는 둘째의 모습을 연상하는 내 마음도 순탄치만은 않다.

그 일로 같이 입사했던 동료가 자살까지 하다니 그 심정이 오죽 참담했을까?

당장에는 그런 감원 선풍에서 빗 겨나 있어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지만, 언제 또 그런 일이 그 애한테도 달려들지 모르는 그런 감원 선풍 같은 경쟁이 없는 사회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걸까?

이멜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동생이 머물고 있다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해 주지를 않는다.

보안을 위한 조치로 보이는데, 꼼꼼하게 따지며 이름의 스펠링도 물어왔다. 동생이라고 이야기하였지만, 갑자기 이름자의 스펠링을 물어오니 어떤 영자를 사용하여 여권을 내었는지 아리송하여 잠깐 우물쭈물했더니, 그런 사람 없다며 끊어 버리는 것이다.


호주 내에서 거는 것이지만 그것도 장거리 전화인데, 또 걸어서 확실치 않은 동생 이름자를 설명하며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아 통화를 포기했기에 호주 내에서 형제 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기는 전화 연락이 닿았더라도, 우리 배가 있는 뉴캐슬에서 동생이 출장 중인 브리스베인 까지는 호락호락하니 만날 수 있는 그런 근거리에 있은 것도 아닌, 호주는 실은 섬이지만 대륙으로 쳐주는 넓은 땅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 그러나 도박 같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