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Feb 26. 2016

갈매기들의 떼죽음

몰지각한 PORT ABBOT POINT의 호주인들

선미에서 Dolphin으로 나가 있는  선미 계류삭.  이 계류삭 줄 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수난을 당한 것이다.

호주의 아보트 포인트(ABBOT POINT)항. 

상륙해도  찾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기항지가 아보트 포인트 항이다, 

이 항구는 그냥 바다에다 파일을 박아 제티(Jetty : 잔교)를 만들어서 외해 쪽 끝에다가 부두설비 - Dolphin - 를 하여 배를  불러들이는 항구이다. 육지의 저탄장부터  부두까지는 잔교 위를 통하는 컨베이어 벨트 설비로 연결시키고 저탄장의 석탄을 그 컨베이어 벨트 위로 실려 보내면 로더(Loader)를 통해 접안하고 있는 배에다  선적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육지로부터 1.7 마일(해리이니 2.75 km)의 길이로 물 위에 세워진 제티(Jetty)의 끝단에 부두가 만들어진 시 버스(Sea berth)인 것이다.


제티 위로 육지에 연결되어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석탄이 실려와 마지막으로 로더에 올려진 후 본선의 선창에 선적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그 부두에 배를 댈 때 보조로 쓰는 터그보트는 20 여 마일 떨어진 보웬항에서 오는 빨간색 칠을 한 것이고, 도선사는 북쪽으로 한참 가야 하는 타운즈빌에서 오며, 항구 줄잡이는 선수미에 각각  2명씩밖에 안되고 라인 보트도 없으므로 접안(接岸)이 이안(離岸) 보다 훨씬 늦게 이뤄지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줄잡이가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라인의 끝단 아이(주*2)에다 부두로부터 온 메신저 라인을 직접 묶으면 안 되고, 아이의 목 쪽에다 묶어서 되돌려 주어 윈치로 끌어당길 때 자동적으로 늘어진 아이를 쉽게 손으로 들어 올려 훅크에 걸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곳이다. 


수속하러 올라온 대리점원이 이곳에서는 고기를 잡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여  저녁때 낚시를 담근 사람이 제법 있었건만, 고기를 낚아낸 사람은 없어서 괜한 생색만을 내는구나 여겼지만, 그건 낚시 도구에 문제가 있어서였다. 아침에 배 옆에 와서 낚시하는 현지 보트들을 보니 모두  릴낚시로 루어를 던지고는 바쁘게 릴로 감아 들이는 일을 반복하는데, 그 가짜 미끼를 덥석 물어 잡혀주는 커다란 고기가 제법 있었다. 

어떤 젊은 부부가 우리 배 옆에서 그렇게 고기를 잡고는 신이 나서 <하이 화이브>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낚시꾼들은 샘을 내기도 했다. 

우리와 같이 낚시를 물에다 담가 두고 기다리는 방법으론 그 고기들이 달려들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 외의 육지 풍경은 나가봐야 별 볼일 없는 한촌이라, 아무도 상륙할 생각을 안 하고 배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냈다.  

  

만 하루 반을 선적 작업으로 지새운 후 예정량이 모두 채워져 출항을 기다리고 있던 오후 한 시 무렵이었다.   

이미 출항을 위하여 발령된 -All Stations, All Stand By! - 명령으로 기관실의 엔진은 언제라도 쓸 수 있게 준비되었고, 브리지를 비롯한 선수, 선미 부서도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아보트 포인트항 무어링(Mooring) 돌핀(Dolphin. 주*1) 위에는 본선의 계류삭을 걸어 놓은 HOOK를 자동으로 RELEASE 시킬 수 있는 LEVER 장치가 있다. 계류삭의 무게만을 느낄 정도의 긴장이 작용할 때 Release Lever를 제쳐주면, 그대로 계류삭의 아이(EYE, 주*2)가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제일 먼저 걷어 들일 예정의 선수와 선미에서 나간 헤드라인과 스턴 라인을 각각 벗겨주기 위한 라인 맨들이 돌핀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터그보트를 먼저 좌현 선수와 선미에 한 척씩 잡아매고, 드디어 출항을 위한 첫 라인으로 네 개의 스턴 라인이 지명되어 방출 지시가 떨어진다.


선미 부분  물속에 프로펠러가 있으므로 가장 빨리  그곳의 계류삭부터 걷어 들여야 엔진 사용이 용이하기 때문에 그곳의 계류삭부터 치우려는 것이다.

-'Stern line, Let go!', 라는 브리지의 명령을 POOP DECK의 이항사가 

-'Stern line, Let go!', 복명복창하면서 즉시 줄을 늦추어 주는 작업을 부원들에게 지시한다.

-'Stern line, Let go  sir!'라는 줄을 확실히 늦추어 준 후, 명령을 완수한 상태를 다시 브리지로 보고하는 복창이 들려야 할 시간까지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있건만. 돌핀 위에서 계류삭의 아이를 벗겨줄 준비를 하고 있던 라인 맨이, 본선에서 줄의 긴장을 줄여주는 -줄을 늦추는- 행동을 아직 제대로 취하기도 전에, 팽팽한 상태의 줄을 그대로 RELEASE LEVER를 당기어 풀어 주었다. 


-꽝!- 

-쉬르륵!- 

-풍덩-


대포 소리라고 이 보다 더 클까? 갑자기 긴장이 풀어진 직경 90 미리짜리 나이론 계류삭이 마치 고무줄처럼 튕겨져 배의 선 미루를 향하여 달려들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 역시 포탄이 허공을 날아가는 소릴 무색게 하면서 그대로 물에 빠졌다. 짧게 잡혀 있던 줄이었다면 반작용과 동시에 그대로 튀어와 선미부를 덮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워낙 길게 잡힌 줄이라 다행히 중간의 물 위로 떨어져 내려서 본선까지 도달하여 휘둘러지는 끔찍한 사고는 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선미부의 상황을 감지하면서,

-푸프! 이항사 다친 사람 없지? 소리쳐 물어본다.

-브리지/푸프! 이상 없습니다. 2 항사의 대답에 휴~우 안도의 긴 한숨을 내 쉰다.


그러나 그 줄이 방출되기 전에 그 줄 위에는 나란히 떼를 이루어 쉬고 있던 숱한 갈매기 무리가 앉아 있었다. 

본선에서 줄을 살살 내어주면, 그냥  날아올랐을 텐데, 그러기도 전에 부두의 줄잡이 인부가 그대로 팽팽한 줄의 자동 레버를 젖혀 풀어 주었으니, -꽝- 소리와 함께 튕겨진 줄 위에 앉아있던 100 마리 가까운 갈매기 중, 반 이상이 놀라기도 하고 실제로 줄에 튕겨 맞기도 한 것이다.


마치 센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 마냥 난분분하니 날린 갈매기들은 순간적으로 공중에서 바다로 곤두박질치며 후드득하니 물 위로 흩어져 내렸다. 이 모든 일이, 설명은 길었지만, 거의 한순간에 일어난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 위에 흩어져 있는 갈매기들은 한참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모두가 한 순간에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인 모양이다. 편히 날개를 쉬고 있다가 그야말로 <청천 하늘에 날벼락 맞은 셈>인데, 그 광경을 본 다른 호주인 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할 말이 없겠지....


내 옆에서 라인 렛고를 지시하며 조선을 돕고 있던 파이로트 만이, 자신을 주시하며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나의 표정에, 어깨를 으쓱하니 추켰다 내리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보아하니 그들 라인 맨들은 그렇게 줄을 풀어주어 갈매기의 대량 살상이라는 일을 만들어 본 게 우리 배가 처음은 아닌 듯 보였다. 

이미 그런 경험을 다른 배에서도 하여 갈매기가 죽고 다친다는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재미로 그런 짓을 또 했다는 의심을 주니, 썰렁해진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쳐 든다. 백호주의를 부르짖으며 자신들만이 제일 인 것 같이 떠들어 대는 사람이 아직도 다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호주, 따지고 보면 겨우 2-300 년 전 이 땅을 개발하기 위한 인부로 강제로 투입되었던 여러 종류의 범죄인들을 선조로 한 나쁜 피가 섞여 내려왔을 역사는 역시 숨길 수 없는 건가! 하는 식의 조금은 과장된 시선이 고개를  쳐들며 그들의 모습을 살피고 싶어 진다.  


 멀리서 봐도 몸뚱이들이 축 쳐진 채 물 위에 떠 있는 50여 마리 갈매기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 쓰고 나서 함부로 구겨 버린 하얀 휴지가 가득 찼던 쓰레기 통을, 물 위로 확  쏟아부어서 후줄그레 해진 각양각색의 흰 휴지가 떠 도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쩌다 그런 몰상식한 사람을 만나 떼죽음을 당했는가? 하는 생각이 드니 사고 현장을 향했던 연민의 눈길을 거둬 들일 수가 없다.

 

내 정신을 가다듬는다. 잠시 동안 도선사(파이로트)의 조선에 등한히 했던 느낌이 든다. 얼른 조선 상태를 확인하며 출항 작업에 신경을 모으기로 하는데 저 지난 항차 기항했던 포트 켐브라 항의 시내인 울룽공에서의 모습이 퍼뜩 떠오른다. 그곳 시내 한 가운데의 쇼핑몰에는 갈매기 떼가 날아와서 애완조 마냥 애교를 부리며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주워 먹던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주(州)야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호주가 아닌가? 


단지 항구의 외모가 외해로 2.75 Km 길이로 삐죽이 내보내어 설비한 TRESTLE(가대) 끝에다 JETTY(잔교)를 만들어 석탄을 실어내는 장비만을 장착한 좀은 살벌한 풍경인가? 이제 와서 맘에 안 들기는 한다. 

갈매기들을 순간적으로 떼죽음 시켜 놓고도, 마치 무슨 즐거운 쇼나 보듯이 빙그레 웃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덧 붙여졌기에 풍경조차 크게 달리 보이는 모양이다. 

들어오는 밀물에다 우리 배를 부두로부터 밀어내기 위해 힘을 쓰는 터그보트의 추진류가 힘을 합치니, 갈매기의 시신들은 점점 밀리고 퍼져 나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갈매기 주검의 몸뚱이가 하얗게 뒤덮여 있던 바다 위 한 부분은 그렇게 흰색을 점점  탈색당하며 본연의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만약 환생이 주어진다면, 그런 횡액을 당하지 않는 낙원에 들어가 즐겁기 만한 생을 꼭 다시 살아 보거라! 빌어주는 마음은, 이미 멀어져 보이지 않는 그들이 있었던 자리를 한 번 더 응시하게 한다. 


모든 계류삭이 걷어 들여지고, 자력으로 움직이기 위한 엔진 오더가 발령된다.

-데드 스로우 어헤드!(Dead Slow Ahead) 도선사의 조언이 선장의 명령으로 나왔다.

-데드 스로우 어헤드! 텔레그라프의 눈금을 DS/H에 옮겨주며 3 항사가 복명한다.

-데드 스로우 어헤드 써! 

텔레그라프의 기관실 쪽 눈금이 DS/H에 응답 후 퉁퉁거리는 엔진의 기동음이 전해지는 가운데 3 항사가 다시 복창하여 보고한다. 


부두가  저만큼 멀어져 나간 후, 마지막으로 도선사의 하선까지 도와주니 이제 우리들만이 남았다.  

배의 선수를 두 주일  가까워질 귀항길의 첫 침로에 들어서도록  지정해주며, 

-에잇 퉤! 퉤!

입안 가득 고였던 씁쓸한 기운을 침에 가득히 담아 그들의 바다로 되돌려 주었다. 


주*1 Dolphin : 육안(陸岸)에서 떨어져 건설된 단일체의 구조물이다. 처음에는 나무 말뚝을 몇 개 박아서 묶은 것이었으나, 오늘날은 강철 말뚝, 철근콘크리트 말뚝, 널말뚝 등을 사용하며, 그 밖에 정통(井筒) ·잠함(潛函) ·부함(浮函)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선박의 대형화에 따라 필요로 되는 수심도 커지고, 시멘트 ·곡물 ·유류 등 포장하지 않은 하물의 하역은 잡화와 달리, 바닷가에서 떨어진 곳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따라서 몇 개의 돌핀을 건설하여 1 버스(berth:船臺)분의 계선 시설(繫船施設)로서 하역에 이용하면 경제적이다. 시 버스(sea berth)의 구조체로 많이 사용된다.( 인터넷에서 퍼옴.) *여기서는 Sea Berth의 구조체로 사용한 경우이다.

주*2 아이(EYE) : 선박을  계류시키기 위해, 육상의 Bollard, Bitt, Hook 등의 계선 기구에 걸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둥근 고리 형태의 계류삭 끝단을 말함.

매거진의 이전글 The Mission To Seafarer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