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검열 아닌 검열

어쩌다 검열하게 된 사신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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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부터 11시까지가 인마쎗트를 이용한 위성 전화의 할인 시간대이라, 아침밥을 부지런히 먹은 후, 시간에 맞춰서 통신실을 찾아 컴퓨터 앞에 앉았다.


회사 호스트 컴퓨터에 연결하여 배에서 보낼 서류를 보내고 나니 회사로부터 오는 서류와 함께 우리 배의 3 항사에게, 사선의 선원으로부터 온 메일도 한 통이 들어 있어 전해 주려고 뽑아냈다. 그러다 보니 사신이지만 자연히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의 사신이긴 하지만, 선박 내에서는 특히 선장은 본선과 외부와의 통신에 대한 책임도 있어 어느 정도 검열 아닌 검열이 있을 수는 있지만, 구태여 그런 경우의 뜻으로 읽게 된 편지는 아니었다.


그냥 훑어본 내용이 편지 받은 데 대한 답장인 모양인데, 안부 인사가 끝난 후,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데 모양새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다짜고짜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배의 분위기가 개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무슨 언짢은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자신은 6월 초 국내 기항 시 내리려고 한다는 마음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불평이 가득 찬 볼멘소리의 연속인 것이다.


개판이란 단어를 읽으며 배 안의 분위기-인화-를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직책인 선장으로서 우선 그 배의 인맥을 훑어볼 필요성을 느껴 각 선의 승조원 리스트를 꺼내어 그 배에 승선한 인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그 배의 명부에 의하면 선장은 회사의 육근 부서에서 지점장까지 했던 사람이고, 기관장은 전에 우리 배에서 나와 같이 승선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두 사람을 상사로 모시고 있으면서, 어떤 이유 때문인 지는 모르지만,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에게 문제가 클 것이란 느낌이 들어섰다. 편지를 3 항사에게 전해주며, 누가 써서 보낸 편지인지를 물었다.


-일기사입니다.

-그래? 그 친구 몇 기인데?

-45긴가 46기 일 겁니다.

내가 그걸 물어본 이유는 선장은 H대 출신이고, 기관장은 M전 출신이지만 그 두 사람은 마음이 잘 맞아 화합을 이루고 있는데, 혹시 일기사가 직속상관인 기관장과 어떤 화목치 못할 일이 생겨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이다.


-배도 새 배이니 문제 될 것이 별로 없을 테고, 사람들 문제가 원인일 터이니 아마 기관장과 트러블이 있는 모양이구먼...

-네?

삼항사가 나의 이야기를 미쳐 이해하지 못하여, 무슨 뜻인지를 묻고 싶은 듯 어미를 높이어 응답한다.

-기관장이 M전 출신이거든, 직통 선배 같으면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할 거 아니야?

-아, 네에-,

삼항사는 잠깐 멈칫했지만, 곧 동의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다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이다.


이 작은 사회인 배안에도 학연과 지연이 뒤섞인 인맥의 그물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어 어떤 때는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티격태격하고 입을 삐죽이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그런 일은 결국 여러 층의 학연이 뒤섞여 있을 때면 더욱 자주 볼 수 있다.


아마도 그 배에서는 학연은 달라도 선장과 기관장은 그런 여건을 모두 이겨내어 잘 융화하며 선내 일을 이끌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는 오히려 더욱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게 된, 일기사나 일항사가 있어서 선-기장의 뜻이 제대로 부원 선원들에게 전해지지 못하게 중간에 차단시키는 일도 있어 보인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느끼는 일은, 넓고 확 트인 바다를 보며 그 안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뱃사람이야 말로 그 바다를 닮은 마음도 드넓은 사나이 중 사나이일 거라는 그럴듯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데, 그게 그냥 선입견일 뿐, 오히려 때에 따라서는 옹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한 그들의 현실을 보며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게 되는 아쉬움이다.


넓은 바다와 닮기보다는 그 안에서 복닥이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인 배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다가, 점점 그 폐쇄성을 닮아가며 속 좁은 사람으로 되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볼 뿐이다.


혹시 우리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 배의 분위기가 개판이라 타고 싶지 않다는 불평을, 다른 배의 동료에게 토로하는 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잠깐 의심해보는 스스로가 짜증스럽다.


인화를 제일로 여기는 선내 생활을 강조하며 지금껏 선원생활을 해 온 내 입장이기에, 그런 상상은 항상 뒷머리를 서늘하게 해주는 아픔 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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