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FARER 명부를 뒤적이며

그 사람 지금은 어디에 있나?

by 전희태


JJS_4355.JPG 도착한 외해에 투묘후 정박등을 켜 줄때 저녁 노을은 반가운건가? 서러운건가?


회사 노조에서 매달 본선으로 보내주는 우리 회사의 선박별 승조원 리스트를 보면 가로로는 50 척의 배가 있고 세로로는 직책별로 쭈~욱 열거되어 있는 승선 중인 선원들 이름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나와 같은 선장만 하더라도 50명이 현재 승선해 있고, 각 직책에 덧붙여 있는 예비 원란 중의 선장란에도 16명 정도가 연가 중이거나 쉬고 있는 선장 명단으로 들어차 있다.


누구라는 이름만 봐도 다 알 만한 사람들이지만, 개중에는 전연 감이 안 잡히는 모를 사람도 몇 명이 들어 있곤 한다.


외부 사람들이 본다면,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같은 직책의 사람들이니 모두가 다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것이, 같은 직책이라도 승선한 연륜이 사람마다 다르니 배가 많으면 많을수록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마치 멈춰 있는 시곗바늘이라면 하루 두 번만큼은 정확히 제 시간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을 가지지만, 분주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은 오히려 정확한 시간과 만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확률처럼, 제 각각 다른 배들을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직책이 같을수록 오히려 서로 못 만나보고 지나치는 세월이 더욱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쉬고 있는 시계 침처럼 혹시 연가를 위해 내리는 경우, 잠깐 서로 직무 교대를 하는 경우로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만남을 동료 모두를 상대로 기대한다는 자체는 역시 욕심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렇게 남들에 떨어질 세라 열심히 움직이던 시곗바늘같이 바빴던 인생에서 어느새 쉬엄쉬엄 쉬어 가다가 아예 멈춰서는 시곗바늘로 되어버리는 입장으로 바뀌는 시점을 바라봐야 하는 아쉬움이 많은 요즈음이다.


일찍이 배를 타고 세계를 누벼 볼 일념으로 학교에 들어갔고 같이 공부하며 생활하던 동기생들, 또 같은 일을 몇 년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으며 지내왔던 얼굴인, 그리운 선-후배들과는, 이쯤 어디선가 이제는 만나야 할 것도 같은 데, 대면하기는 계속 힘들고 풍문에 들려오는 불확실한 소식으로만 알고 지내야 하는 심정이 점점 더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바다 가운데에서 만났다가 서로 지나치며 VHF 전화 통화로 전해지는 소식 속에서 혹시나 그들 중 누군가가 상을 당했다던 가 하는 황당한 이야기라도 듣게 되는 날은 하루 종일 뱃사람의 현실을 우울하게 돌아보며 침울해지기도 한다.


오늘따라 이토록 승조원 명부를 꼼꼼히 살펴보며 한 사람 씩 그 인연을 되짚어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잊혀가는 세월 속의 사람이 되려는 스스로를 부인하고픈 좀은 서러운 현실 때문인가? 오늘따라 씁쓸한 오후가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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