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했던 순간들이 늘 반가웠던 사람.
항해 중에 서로 가까이 지나치며 만났다가 다시 멀어지는 배가 있어 VHF전화로 연락을 취했는데, 짐작했던 대로 우리 회사의 자매선이었다.
사실 쌍안경을 들어 보면서 어떤 배인가를 미리 체크하고 조사한 결과 우리 회사의 자매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연락을 해본 결과이기는 하다. 그렇게 그 배와 연락이 닿아 통화가 되었는데, 그 배의 누군가가 나와 통화하고 싶다는 특별한 전언을 해 온 모양이다.
마침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려는 때에 3항사가 식당으로 전화를 걸어와 그런 내용을 전해 준다.
-누가 찾는데?
나를 아는 누굴까? 하는 의문은 대뜸 누구인가부터 물어본다.
-예, 팬 리더의 김 O옥 선장님이라고 그러시던 거 같아요.
-김 O옥?? 아니야.... 김 O욱이 맞을 텐데.
-예, 맞습니다. 김 O욱 액팅 선장(주*1)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 친구 이제야 선장 진급을 했구먼.
상대방이 누구라는 걸 알아내고 반가운 마음에,
-알았어! 나 지금 당장 올라가 볼게.
숨 쉴 여가도 없어 보이게 브리지를 향해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층계를 오르는 내 뇌리에 그와의 인연이 주마등 되어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벌써 6년이란 세월이 그와 나 사이에서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내가 거제도 조선소에서 신조선을 인수하던 바빴던 그 세월에, 그는 인수 일항사로 같이 승선을 했던 동료였다.
그것도 연속 2년에 걸쳐 두 척의 신조선을 계속해서 같이 맡아 주었던 인연을 가졌기에 더욱 기억에 새로운 일항사였다.
그리 흔치 않은 인연인 연속 해서 함께 한 두 신조선의 승선 생활을 끝낼 무렵, 그는 육상으로 올라가 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적성이 맞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다시 배로 나가야겠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그 뜻대로 선장으로 진급하여 다시 배로 나온 것이다.
그의 현재 심정이 어떠하겠는가를 짐작해 본다. 내가 예전 첫 선장을 하며 느꼈던 그 심정과 다를 바 없을 진 데 지금 그의 마음은 세상이 다 자기를 위해 있는 것 같은 그런 장미 빛 색깔 이리라.
-어이! 김 O욱 선장님, 진급을 축하하네.
전화기를 들자마자 다짜고짜 축하의 말부터 전해준다.
-감사합니다. 선장님! 건강하시지요?
그렇게 반가운 인사를 거쳐서 그간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해가며 한참을 떠들다 보니, 시간도 제법 지나갔고, 어느새 할 말 역시 거의 바닥이 날 정도가 되었다.
거기에 또 통화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여,
-항상 느긋한 마음으로 선장 직무에 임하라.-는 말을 곁들여, 안전항해를 당부하는 덕담을 끝으로 전하며 그와의 통화를 끝내기로 한다.
들고 있던 수화기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면서, 자신감과 기쁨이 흘러넘치는 어투로 시종 씩씩한 통화를 하던, 방금 피어나는 꽃송이 같은 그의 싱싱함에 새삼 부러움을 느낀다.
이미 활짝 피어 버린 꽃송이로 그 꽃이 질 날을 기다리는 것 같은 형편으로 변해 버린 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심정이 들어서니 반가움에 들떠있던 심정에 절로 숙연한 기운이 찾아든 것이다.
하나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지는 꽃도 엄연한 꽃이므로 지는 일 그 자체 또한 아름다워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꿰뚫음이라도 빌려서, 지는 꽃이 생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담담함에 빠져들기로 작정하며 브리지를 내려온다.
주*1 액팅 선장 : 한 항차 정도의 회사가 정한 필요한 기간 동안 선장 직무를 실습하는 처음 진급한 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