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브리지에서 선수까지도 200미터가 넘는 선박이니, 현 시정이 150 미터 정도 되는 모습이다.
더욱 시야가 좁아질 경우에는, 바로 앞의 헬리포트에 그려진 마크조차 보이질 않는, 싸늘하니 짙은 안개를 종종 만나게 되는 게 바다 위 생활이다.
빨라진 하역 작업으로 인해 당초 예상했던 8일 날 출항이 하루 당겨져서 오늘 아침 7시에 떠나기로 한 것이다.
20분 전에 도착한 도선사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사다리를 타고 (입항 때 사용했던 사다리니까 하역작업을 끝내 공선 상태에선 너무 높아 사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음.) 올라오려고 재설치 작업을 한참 동안 기다린 후, 7시 10분 전에 승선했다.
새벽녘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이 안개로 어슴푸레하게 시정이 엷어져 가는 풍경을 보며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그 걱정스러운 예측대로 출항하려는 시점에 먼저 하동 발전소 부두에서 출항한 오션 코리아호를 맡아 조선하던 도선사가 우리 배의 도선사를 부르더니 바깥은 안개가 짙어 코앞조차 안 보이는 상태이므로 출항을 좀 늦출 수 있으면 늦추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온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부두 부근은 그래도 1마일 가까이 사물이 분간되게 보이고 있는 상태이므로 그냥 부두에 대어 놓고 있기에는 좀 찜찜한 느낌이며, 특히 부두 사용료를 물어내는 TERM이 7시 30분까지 이라니 그때까지는 배를 부두에서 떼어내야 하는 게 회사에 대한 입장이라 그냥 출항을 서둘러서 부두에서 모든 라인을 걷어 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안전을 위해 선수 쪽에 터그보트 한 척을 에스코트시키도록 하여 부두를 떠나게 하였다.
낙포각을 지날 때까지 그래도 괜찮았던 안개가 9번 부표를 지나면서 완전히 포그 뱅크(FOG BANK)에 빠져들어 코앞이 안 보일 정도로 시정이 제한되어 순전히 레이더를 의지하여 살살 기어가듯 가슴 조이며 움직인다.
희뿌연 장막 속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기적 소리는 숨 가쁜 무중 항해 중의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소리치는 신호음이고 VHF전화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레이더를 보고 갖는 정보에 대한 확인과 그에 의한 조선 방법을 서로 알려주며 안전하게 통항하기를 바라는 움직임의 하나로 나는 소리들이다.
소경이 만져서 상대를 확인하듯이 파이로트용 도선선이 우리 배의 옆구리에 와서야 확인하고 파이로트를 싣고 갈 준비를 한다. 아직도 시계(視界)는제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본선에서 하선한 파이로트는 금세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내가 직접 조선을 하여 항구를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배를 천천히 몰아가기 시작했다.
11시가 되었다. 아침 7시부터 시작했으니 꼬박 네 시간을 서서 조선에 임했으니 다리가 뻑적지근하며 피곤하지만 무사하게 향내를 빠져나온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시정이 점점 나아져 가는 점 또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광양에 두고 떠나게 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받아 주는 잽싼 동작이었지만 아내는 요 며칠 쌓였던 피곤을 풀기 위해 찜질방에 들려서 찜질을 하고 오후 3시 차를 타고 집에 가기로 작정하고 있단다.
나도 무사히 항해를 빠져나왔고 이제 안개도 좀 걷어져 가고 있어 한 시름 놓으며 항해하고 있다고 전하니, 뱃사람의 아내가 아니랄까 봐 겁이라도 났나?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나보다도 더 기뻐하는 기색이 수화기를 통하여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그렇게 앞으로 한 달 이상 헤어져 있어야 하는 이별을 다시금 확인하듯이 우리 부부는 별리의 인사를 주고받으며 전화를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