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담 가람 담배 냄새

냄새는 추억을 반추시킨다.

by 전희태


E8(8643)1.jpg 인도네시아 담배중 지삼수.내가 인도네시아를 다니던 70년 대에는 최고급의 담배였음.그 밑으로 위스미락 과 구담가람이 있었음.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옴.)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과 인도네시아 스라베시 섬과의 사이인 필리핀해를 남하하여 호주를 향하고 있는 항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


어제 낮까지도 지지부진하던 속력이었건만 엊저녁부터는 아예 딴생각을 차리고 나선 바람난 수캐 마냥 휑하니 달리기를 시작하니, 평소와 다르게 많이 달린 거리를 항해일지에 써넣는 손길이 절로 흥겨웠다.


오늘도 선창 청소의 일손을 돕기 위해 아침 여덟 시부터 당직에 임하는 3 항사를 선창으로 내려 보내려고 내가 선교 항해 당직에 직접 임하며 교대해준 일항사가 달렸던 거리도 직접 기입하였던 것이다.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내어 만들어진 용기에 가득 담긴 석탄 찌꺼기를 선창에서 힘겹게 들어 올려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한 통, 두 통 숫자를 세어 적고 있는데, 갑자기 짙은 비린 냄새가 코끝에 꽉 끼쳐 들어 절로 눈살을 찌푸린다.


점심때 먹을 새끼 조기 구이를 만들고 있는 GALLEY로부터 흘러나온 생선 타는 냄새가 냉기의 선외 배출을 막으려고, 선내 공기를 밖으로 빼지 않고, 에어컨디셔너의 흡입구를 통해 다시 걷어 들인 후, 한번 더 냉각시켜 실내로 되돌려 주는 순환 시스템 때문에 생겨난 배로 증폭된 냄새 때문이다.


처음 조금 날 때는 입맛을 돋우는 좋은 냄새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계속 불어나서 짙어진 냄새는, 어느새 브리지의 공기를 눈으로 봐도 푸르스름하게 만든 상태로 되어 있었다.

역겨운 기분이 들어 환기시키려고 브리지 외부로 통하는 양쪽문을 모두 열어 준다.


비린 내음이 있긴 해도 시원하던 실내의 공기에, 후덥지근한 열대해역의 외부 공기가 섞여 드니, 얼굴 가득 후끈하게 끼쳐지는 첫 감촉이 좀 마음에 쓰였지만, 그래도 깨끗한 대기의 유입이라 심호흡으로 마지 해본다.


폐 가득히 들어 마신 공기의 끝 부분에서 달착지근한 맛이 느껴지더니, 더 해지는 옛 추억의 아스라한 감촉이 꿈의 재현이라도 이루듯 불현듯이 함께 들어서며 코 끝에 어리어 든다.

-구당가람 담배 냄새가 나는데....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하는데,

-네?, 마침 문을 열 때, 외부 통로를 통해 브리지로 들어서던 기관장이 내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한 듯, 무슨 이야기냐는 의문을 가지고 쳐다본다.

-이 냄새 모르겠어요? 달짝지근한 인도네시아 담배 냄새 말이야! 대답을 해주며,

내 코가 예민해서 그가 못 맡고 있는 냄새라도 캐치하고 있단 말인가? 의아한 심정으로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니, 역시 코끝을 간질이는 예전에 가졌던 기억에 남는 냄새와 당시의 추억들이 새삼 싸아하니 등판에다 작은 소름마저 뿌려주면서 덤으로 나서주고 있다.


틀림없이 냄새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번에는 해도실로 들어가 방금 변침 한 위치를 중심으로 한 주위를 해도상에서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178도로 오던 코스를 199도로 바꾸어 준 주위에는 필리핀의 다바오만 끝단을 뒤로하며, 인도네시아의 PULAU PULAU TALAUD 섬이 왼쪽 앞에 그려져 있는 해역이다.

거리상으론 육지의 그림자가 아직은 눈에 뜨이지 않는 거리를 두고 있는 바다 위이지만 틀림없이 냄새는 해도가 말해주는 그들 육지로부터 흘러 온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아예 윙 브리지로 나가서 대기를 힘껏 들이켜 마시면서 재확인해본다.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예전에 다녀봤던 육지의 그리운 향기가 그곳 공기 중에 떠 있다가 반가운 환호를 지르듯 내 가슴속 깊이 다시금 스며들어 온다.


30여 년 전. 난생처음으로 외항선을 타고 들까부는 파도에 며칠간 시달리는 항해를 한 후, 목적했던 동남아의 어느 항구에 접근하게 되었을 때, 육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더하여 느꼈던 사람 사는 체취 같았던, 그 후각을 은근히 자극하던 아련한 추억의 냄새 중 하나를 이 바다 위에서 다시 만난 거다.


항해를, 특히 장기간의 대양 항해를 한 후 육지에 가까이 접근할 무렵이 되면, 그 항구 특유의 냄새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듯 나타나곤 하는 경험을 우리 선원들은 알게 모르게 하게 된다.


돈을 받아야겠다는 아글타글 하니 들볶는 것 같은 고약한 심성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이, 그 냄새들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아무런 조건 없는 시혜를 베풀 듯 아직 눈에 뜨이지 않는 좀 먼 거리를 둔 바다 위까지 은은히 메워서 보내주고 있었고, 결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그저 없는 듯 하니 있다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라 판단(?)하면 이렇게 환영해 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지 시원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스스로 에어컨의 탁한 공기 속에 갇혀 지내면서, 바겐세일보다도 더 풍성하게 베풀고 있는 대기가 준비한 그 향기를 미처 모르고 이 바다를 지나고 있었던 이 아침에, 어쩌다가 배 안에 가둬 둔 냄새가 좀 역겨워져서 환기를 시작하였기에, 옛날의 냄새를 찾아내게 되었고, 당시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때 그 시절의 즐거웠던 이야기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면서 덤으로 해 줄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구당가람 : 인도네시아에서 발매하는 토속 담배의 일종으로 정향을 섞어 만들어졌다는데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연기를 빨아들일 때 탁탁하는 작은 불꽃도 튀며 독특한 향냄새가 섞여 들어오는데 불똥의 튀김으로 옷에 잔구멍을 자주 내긴 하지만, 일반 담배보다는 오히려 가래도 끓지 않고, 감기 걸렸을 때 피워도 목구멍이 별로 아프지 않아, 흡연 피해가 적은 것 같은 느낌을 주던 앞쪽과 뒤쪽의 굵기가 조금 차이가 나는 권련으로, 담배를 물었던 입술 부분을 혀 끝에 대보면 달짝지근한 맛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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