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 청소 끝

무사히 선창 청소를 끝내고

by 전희태
D214(2329)1.jpg 선창 청소를 끝내고 난 후,마지막 청소 도구를 끌어 올리는 모습


출항 다음 날부터 시작했던 물청소를 겸한 선창 청소가 드디어 오늘 오후로 끝났다.

도와주려는 하늘의 뜻이었을까?

일주일 내내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무거운 해치 커버를 열어 놓고 하루 종일 작업을 하면서도, 파도에 흔들리는 선체 운동 때문에 해치 커버가 레일에서 탈락되거나 바퀴가 비틀릴 일을 걱정하지 않고도, 매일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는 건 사실 날씨를 좋게만 예상할 수 없는 바다 위에선 큰 축복이었다.


청소에 참가했던 작업자 모두는 무사히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힘들었던 순간들을 잠시나마 잊어버린 채 환하게 웃고들 있다.


나도 손발을 씻고 편안한 마음이 되어 집으로 보낼 편지를 쓴다.


큰애 보아라

오늘 너희 엄마의 동승을 신청하겠다는 메모 식의 연락을 두 번째로 회사에 보내면서, 너의 중계되어 온 편지를 받았다.

우리 배에서 쓰고 있는 것은 <한글 97>이다. 파일을 변환시켜 보내 줄 때에는 꼭 HWP를 지정해서 보내주는 것이 바람직하단다.

오늘 것도 HWP로 지정하지 않고 파일명을 보내어 읽어 들이기 위해서는 한번 더 손질이 가야 하는 일을 겪어야 했지.

아직까지 다음 항차의 도킹 수리를 할 장소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외국항으로 될 확률이 크므로, 동승 신청을 더 이상 늦추고 있다가는 나중에 출국 수속하는데 지장이 우려되어 우선 신청부터 한 것이다.

엄마더러 회사의 지시대로 빠른 시일 안에 모든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라고 전해주렴.


동승을 허가한다는 연락을 아직까지 회사로부터 받고 있지는 않지만, 허가될 것도 믿고 있으니 담당 부서로부터 집으로 연락이 오는 대로 나한테도 결과를 알려 주도록 부탁한다.


막내 이야기 잘 전해 들었다. 너를 포함한 둘째까지, 내 자식들은 모두는 대기만성형인 모양이지?

가로 늦게나마 책을 읽어보며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니,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구나!

공부에는 스스로 깨달아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는 것이니, 녀석이 제대하여 나올 때쯤은 뭔가 보여 줄 수 있겠거니 기대를 걸어 본다.


비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제는 장마로 인해 너무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즌도 다가서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장마에 대비하는 준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니, 너도 잘 챙겨봐 주길 바란다.


지난번 광양에서 엄마의 말이 우리 집 행운목이 꽃대를 올리고 있다는 전언을 전해 듣고 굉장히 기뻤단다.

사실 지금까지 그 나무를 집으로 가져다 길러 본 경험이 얼마나 많았었니?

그런데도 꽃은 한 번도 피워보지 못해 서운했는데, 이제 그 꽃나무를 알고 난지 30년이 되어오는 이 마당에 꽃을 피우는 녀석을 갖게 되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


꽃을 피우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을 믿고 싶어서, 행운 목이란 이름을 같이 들여와 남들이 나무 이름을 물을 때 그렇게 부른다고 가르쳐 주기도 했던 것인데....

너희들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을 당시에, 꽃을 피운 그 나무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나 혼자 속으로 얼마나 안달을 했던지... 그때의 기분이 새삼스럽구나.


결국 배 안에서 꽃을 피운 녀석의 사진을 찍어서 할아버지께 보여드린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꽃의 향기만큼은 전달할 수가 없었지.

단지 꽃 내음이 야래향(夜來香, 예라이샹)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이번 여름의 저녁 무렵이면, 우리 집 부근을 지나는 사람들은 녀석의 짙은 꽃향기에 모두가 한 번 찍은 말을 거들어 보는 일이 생기겠구나.

-이거 어디서 나는 냄새야? 킁! 킁! 아주 향기로운데... 하며 말이다.


그러나 향수 냄새라면 극도로 싫어하는 너의 엄마는 제일 먼저 꽃향기에 머리가 아프다고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럴 땐 가까이서 맡지 말고 떨어져서 엷게 냄새를 맡는 게 정석이라고 전하렴. 그러면 그 은은한 자연의 향기가, 결코 인공적인 향수와는 달리, 새로운 감흥으로 코끝을 맴돌 거고, 향기-향수-에 대한 오해도 풀어주는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오늘은 여기 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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