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PSC 수검을 끝낸 홀가분한 마음 되어.
오래간만에 찾아온 곳이라 이곳 만의 독특한 항만 체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약간의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도선사의 승선을 위해 어떻게 하는가를 먼저 들어가는 다른 배의 보고 상황을 VHF 전화로 엿들어서 참고하기로 한다.
2샥클까지 감아 놓고 도선사의 헬기가 도착하도록 기다리게 하며, 접안 현의 갱웨이 래더를 준비시키며, 제일 먼저 선적이 시작되는 선창을 열어 주도록 요청하는 걸 듣고 나니, 파이로트가 승선하여 홀드 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했었다는 예전의 기억이 절로 되살아 났다.
22시 30분에 도선사가 타겠다며 그때까지 닻을 감아서 움직이는 상태로 만들라는 통보를 22시에 연락해 왔다. 우리 배에게는 2샥클까지 감아 놓고 기다리라는 이야기가 아닌 닻을 감아 움직이라는 조금은 다른 지시라 아마도 우리의 투묘 위치가 도선사 승선 구간에서 가까이(0.7마일) 있어서 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닻을 감기 시작했다.
사방에 얕은 곳이 산재해 있는 묘박지에서 마음 놓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 조금은 난감한 마음이 들지만 온다는 시간에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닻을 감기 시작했다.
2220분이 되도록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 없는 상황 아래에서 닻은 이미 1 샤클만 남긴 상태라 머뭇거리는 마음이 들어 잠깐 감아 들이는 걸 정지시키면서, 항만에다가는 이미 발묘 완료됐다고 과잉 보고로 미리 해주었다.
그런 보고를 듣자마자 도선사의 헬기에서 알았다며 2분 후에 도착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와서 어마뜨ㅡ거라 하는 심정 되어 얼른 닻을 다시 감아 들이도록 지시하고 윙 브리지에 나가니, 뒤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가지고 헬기가 접근해 오는 모습이 보인다.
깜깜한 그믐의 대기 속에서 헬기는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스스럼없이, 준비된 본선의 헬기 착륙장인 7번 해치 폰툰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어서 내려선 도선사는 갑판에 내리기 무섭게 7번 창을 열어 놓으라고 요구를 해온다. 자신이 선창 상태를 점검하는 서베이어를 겸하고 있다면서...
얼른 열 수 있도록 준비시키며 계속 돌아가는 선수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 엔진을 D/S H로 걸어주고, 우현 20도의 타를 잡도록 조선 지시를 하였다.
열리는 홀드의 모습을 보아 마음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는지 자신의 정식 임무인 도선업무에 들기 위해서 도선사는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나 브리지로 향해 올라온다.
시간으로 따지면 어젯밤 열 시 반에 시작된 쉬프팅이 하루를 넘겨 오늘 새벽 한 시 반이 되어서야 모두 끝이나 수속 차 올라온 대리점으로부터 선용금을 전달받고 자리에 누우니 두시가 넘어서 있다. 그래도 자야지 침대에 파고들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PSC검사관이 승선하겠다는 연락도 같이 받고 있었기에 그가 올라와서 하는 점검을 잘 처리해 내어야 하는 게 제일 큰 급선무이니 제발 잘 수검하길 간절히 바라며 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겨우 세 시간 눈을 붙였지만 그래도 다섯 시가 되니 저절로 눈이 떨어지는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벽 운동부터 계속하기로 한다.
잠이 모자라는 관계로 약간은 멍한 기분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아침 아홉 시 20분에 검사관을 맞이하였다.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할 정도로 뚱뚱한 검사관은 3층의 사무실에서 서류검사로 일차 점검을 시작하였고 그 일이 끝나니 선내를 한 바퀴를 돌며 선내의 제반 상황을 살피는데, 통상적으로 우리가 제일 걱정하고 겁먹는 일이 이런 순찰에서 발견되는 결함사항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당장 수리해야만 떠날 수 있다는 판정이 내려지는 일이 발생되면, 꼼짝없이 배가 붙잡히어 그 일을 마쳐야만 출항이 되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준비하고 성심 성의껏 검사관을 대하고 접대하는 게 아닌가?
10시 40분 드디어 전 항목에 걸친 검사가 끝나고 교부된 점검 상황의 지적 결과는 다섯 건으로 모두가 경미한 사항으로 사실 그런 것이나마 지적이 없다면 16년 된 나이의 배로서 체면(?)이 안서는 정도의 일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안이었다.
유니폼인 근무복을 단정히 입고 검사관을 계속 옆에서 보좌해주며 같이 점검에 임해준 우리의 정성이 통한 것이라 여기며 검사관이 떠나간 후 옷을 갈아입는 마음은 그렇게나 홀가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큰 시름 하나 벗어 놓은 것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만은 걱정하고 있던 일을 무사하게 끝마침으로 인해 날아갈 듯 홀가분해진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