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낸 편지
첫째, 둘째 보아라
너희들 편지를 받고 즉시 답장을 낸다고 작정하고 있다 가도 소소한 선내 일들이 생겨 그쪽에 신경을 쓰다 보니 어느새 며칠이 지나갔구나.
이제 출항하여 모든 일을 대충 정리하고 보니 시간이 좀 나는구나. 그래서 이 편지는 너희 둘에게 보내는 것으로 하였으니 같이 보도록 하여라. (안 그래도 다들 같이 보고는 있겠지만...)
오래간만에 찾아본 항구 포트 헤드랜드였지만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치 처음 와 보는 항구 같이 서먹한 느낌을 가졌었는데 도착해서부터 다시 예전에 찾아봤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 오르는구나.
특히 그곳에 살고 있는 교민인 Y 씨가 아직도 정정한 모습으로 현역에서 뛰고 있는 상황을 보니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 들더구나.
그 양반의 운전면허가 벌점 초과로 3개월 휴직을 당해 그 차를 타고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없어 좀 서운하긴 했지만, 90년대 초반에 마지막으로 보고 이번에 다시 재회했으니 반가운 마음에 서운함은 금세 사라졌었지.
게다가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PSC(PORT STATE CONTROL) 검사도 배가 붙잡히는 경우를 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Major Defect)의 지적을 당함이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어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고 머무르다가 짐을 다 싣고 떠난 것이다.
위의 PSC 검사란 승조원과 배의 안전 및 해양 오염사고 등에 대한 대비를 위해 감항성, 안전성, 기타 모든 사항을 적법하게 관리 운용하고 있는지를 어느 나라의 배인 것엔 관계없이 기항한 국가의 검사기관에서 입항해온 모든 배를 검사하는 국제적인 제도이다.
우리 배가 비록 태극기를 단 한국의 배이지만 호주에 기항하면 호주 검사 당국이, 캐나다에 기항하면 캐나다의 검사관이 올라와서 배의 서류에서부터 실제 현황을 직접 검사하는 제도이란다.
보통 한번 검사하여 통과되면 그 유효기간이 6개월이며, 검사 결과에 따라서는 배를 억류시켜서라도 그 지적 건을 깨끗하게 처리한(수리나 물품 구입 등) 후에야 출항시키는 경우도 있어, 그럴 경우 막대한 사손을 입히게 되니 사실 좀 낡은 배를 타는 경우에는 되게 신경이 쓰이는 일이란다.
어차피 본선도 船齡이 16년이나 되니 그런 검사에는 타깃 선박으로 될 수밖에 없어 그에 대비한 정비를 하느라고 사실 공휴일을 포함해서 하루도 쉴 틈을 못 가지고 준비를 하며 항해를 했었는데, 지적한 사항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몇 가지의 지적만으로 끝났으니 전 승조원이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쉬지 못하고 일한 보람을 느끼면서였지.
이제 광양 도착해서 양하가 끝나는 대로 중국 대련항으로 가서 대대적인 정기수리를 해야 할 터인데 그 준비를 위해 또다시 바쁘게 뛰어야 할 것 같구나.
오늘은 여기서 일단 너희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끝맺음하련다. 뒤에 너희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가 덧 붙여 있으니 전달 바란다.
항상 건강하여라. 특히 무더위에 약한 너희들의 건투를 빈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