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소 아줌마, 보이소

흐르는 세월이 야속한 건가?

by 전희태
JJS_5405.JPG 밤새워 일 하던 작업이 잠깐 쉬고 있는 새벽녘


내일이면 6.25 사변이 난지 벌써 51년째이군요.

그런 일로부터 어느새 반백년이 흘러 그때의 처참하고 어려웠던 시절일랑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아오다가 문득 달력을 보면서 겨우 되새겨 봅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은 30년 주기인 세대교체가 이미 두 번째로 이어지고 있으니 당시의 주력 세대들 거의 모두를 교체시켜 버렸기에, 아예 그런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게 정답처럼 느끼게 되었고, 사람에 따라서는 아예 그 사실을 이해조차 않으려는 세대가 이 사회에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좀은 서운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실이 요즘인 것 같네요.


나 역시 그 전쟁이 시작될 때에는 국민학교 3학년에 다니던 시절이니 아이의 눈으로 직접 보고 또 겪기도 했던 전쟁 속의 비참한 모습을 제일 먼저 떠 올리며 이날을 맞이해 왔지만, 이제는 그 기억의 테두리조차 바래버린 낡은 흑백 사진 같이 뿌옇게 흐려져가는 느낌마저 드는군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 지음에 와서는 옛날의 기억들을 한 번씩 떠올릴 때마다 그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 보는 그런 일을 종종하고 있음이,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세월에 바래어 흐려진 기억을 확인해 두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러는 거라 여겨지는군요.


결코 나이 먹음을 초조하게 생각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남은 세월을 헤아려 보게 되는 버릇 또한 생긴 것을 보며 고소를 머금게 됩니다. 그렇게 또 금년의 6.25도 별일 없이 흘려보내게 될 것 같군요.

그래도 6.25에 희생된 영령을 위해 한번쯤은 고개 숙여 묵념이라도 해야 마음은 편해질 겁니다.


다음 항차의 행선지가 확정되었습니다. 중국의 대련 항으로 독킹 수리 가는 것으로 결판이 났네요. 따라서 당신의 중국행도 미리 바라고 예상한 대로 기정사실이 되겠는데, 실은 그다음 항차가 문제이군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그다음 항차는 호주로 가는 것인데 그게 나의 원하는 대로 안 되고 캐나다로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구려.


어쨌든지 당신에게 시드니를 꼭 한번 안내해 주고 싶었는데, 다음 항차가 호주를 젖히고 캐나다로 되기 쉽다는 그 정보가 조금은 부담스럽군요.

하지만 캐나다의 밴쿠버 항도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에 들 만하니(누구는 4대 미항으로 넣기는 합디다만...) 그걸로 위안 삼고, 다음번에 다시 한번 호주의 시드니에 도전해보죠 뭐.


어쩌면 당신이 늘 이야기하던 아름다운 캐나다의 구름을 한 번 더 보라는 하느님의 뜻인지도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중국에서 수리가 끝나면 광양에 기항하여 연료유를 수급받고 떠날 예정도 잡혀있다는데 캐나다를 가기 힘들거나 싫으면 그때 내려도 되겠지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봅시다.


중국에서 수리 중에도 배에서 기거하며 살아야 하는데 문제는 에어컨을 수리해야 하므로 적어도 일주일 가량은 무더위 속에서 살 각오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 될 것 같군요.


그런 무더위에 유의한 약품이나 옷을 생각하고 준비해 보세요. 또한 조선소 내의 공기 중에 분진이 많으므로 마스크를 해야 할 경우도 있으니 마스크도 당신 꺼 몇 개를 준비해 두세요.

배 안에서 쓸 물건으로 슬리퍼(발바닥 요철인 지압용) 각각 1켤레, 당신 여름옷과 속내의,

편한 구두, 여름 화장품, 선글라스,

관광할 때 사용할 카메라,

일상용품으로 내 처방약,

그 외에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추가하시고요.


몸만 와서 편히 지내고 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수리를 하는 일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매일 같이 관광하는 것만을 고집하는 생각일랑 일단 접어두고 임해야 할 것 같아 그게 좀 마음에 안쓰럽군요.

생각나는 게 있으면 다음 편지에 다시 연락드리겠소.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안녕. 당신을 무지무지하게 사랑하는 당신의 반쪽 -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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