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씨앗을 살피며
어느새 금년도 절반이 지나버리며 장마와 태풍이 넘나드는 7월이 성큼 다가서고 있군요.
지난번 큰애 편지를 보니 이름을 제비라 하는 태풍이 불청객으로 찾아왔었던 모양인데...
우리가 필리핀 섬들을 왼쪽에다 두고 올라가는 항해를 하는 이곳이 태풍이 생겨서 크기 시작하며 어디로 갈까 궁리도 하는 것 같은 그런 곳이기에 기상도를 앞에 놓고 열심히 혹시 그런 기미를 보이는 저기압이 생기지나 않았는지 훑어보는 게 요사이 내 일과의 하루 시작 같군요.
배가 속력이라도 어느 정도 있다면 그래도 도망가는 찬스나 피하는 행동을 뒤지지 않고 해보겠는데 워낙 느림보이니 일편단심 달리기만 하면서 제발 너희들은 가까이 오지 말 거라 하는 식이 되니 씁쓸한 마음 되기가 흔하죠. 또 피항해서 배를 세우고, 태풍이 먼저 지나가길 기다리려고 해도, 풍족한 물의 한가운데 이건만 먹고 마시는 물이 떨어질까 봐 걱정 하나를 더 보태야 하는 입장되기가 십상이니, 이 또한 내 속을 들끓게 하는 현실의 하나랍니다.
그러나 당신과 아이들이 항상 나를 위해 해주는 기도가 있으니 별 탈 없이 무사한 항해를 마치며 우리나라(이번에는 광양)에 들어가게 될 걸 믿고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답니다.
평소 남에게는 모든 일을 미리 사서 걱정하지 말고 일을 당해서 걱정을 해도 된다며 대범한 척 하지만, 사실 태풍이 내 배와 가까운 부근의 해상에서 생길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이 앞에 놓이게 되면, 나 역시 남들 마냥 걱정부터 앞서게 되는 걸 보며 고소를 짓곤 한답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소?
특히 나의 판단과 결정한 결과에 따라 나를 포함한 22명이란 사람들의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더욱 그런 과중한 스트레스가 나를 찾을 때마다 하느님께 빌면서 매달리어 빠져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심정이라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고 나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직은 우리 배와는 상관없는 자리에서 1004 hpa이라는 수자와 문자가 결합된 상태의 저기압이 저 멀리 동쪽 바다 위에서 생겨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천사(1004)의 모습으로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만 하면 좋으련만... 그래서 우리 배가 무사히 목적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바라고 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내 소망사항일 뿐이란 걸 지금까지의 내 경험은 알고 있습니다.
헌데 배가 잘 달리지를 못하고 있군요. 역 조류이긴 하지만 8.5 놋트의 속력 표시는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속을 끓이고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가면 벗어날 것으로 믿고 싶은 마음을 키우면서(그렇게 살아온 세월이니까요.) 이 아침 열심히 걷기 운동도 하였구먼요.
나야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좋은 건강을 지키며 잘 지내고 있지만 집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더위에 출퇴근하느라 고생이 많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생활하여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유용하고 즐겁게 쓰도록 합시다. 자 이제 작별 인사를 보내렵니다.
참! 위에 인용했던 <hpa>이란 단위는 예전에 기압의 세기를 표시할 때 쓰던 mb(밀리바)와 같은 크기를 나타내는 몇 년 전에 새로이 제정된 기압 측정 단위이지요.
읽기는 <헥타 파스칼>이며 1 기압을 예전에는 1,013 밀리바라 했지만 이젠 수자는 마찬가지로 1,013이지만 단위만 헥타 파스칼이 된 것이지요.
6월 30일 아침 당신의 영원한 반쪽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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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기분이 찜찜한 상태로, 머리 속은 온통 TD와 기압만이 들어 찬 듯 브리지에 올라가면 기압계부터 먼저 보고 기압의 변동을 체크하며 여섯 시간마다 나오는 기상도 역시 나오기가 바쁘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1,000 마일이 넘는 곳에서 몸을 일으키어 한 이틀 있더니 이제는 움직이려는 기미조차 보이는 1,004 hpa의 저기압더러 제발 좀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더 있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픈 마음이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날씨라 기분마저 저조한 가운데 10 노트도 못 내고 있는 배의 스피드를 아쉬워하며 어서 빨리 역조의 해류에서 벗어나 주길 갈망하고 있다.
아침에는 8.5 이하로도 달리던 속력이 그래도 오후부터는 9.5에서 0.1~0.2 정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달려주어 그나마 위안을 삼으며 내일이면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키우고 있다.
우리의 항로를 검토하여 추천해주는 KS WEATHER에다가 어제는 정기적인 보고를 보내주는 날이 아니었지만 정오 위치를 보낸 이유가 있다.
젖이 잘 안 나오는 어미라도 울고 보채면 빈 젖이라도 물려줄까 믿고 싶은 그런 젖먹이 같은 심정 되어, 우리 배 항정에 대해 어떤 새로운 회신이라도 받아 볼 수 있을까? 기다리는 심정이 있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