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 부린 전장 등

항해등 고장 난 채로 항해하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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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겨울철 선수로 쳐 올라 온 파도가 얼어붙은 선수 마스트. 마스트 상층부 볼록하니 비치된 항해등은 이런 악천후에도 물이 새어들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Photo by Capt.Jeon


출항을 하면서 안개 끼는 날씨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한낮에 항해등을 체크하였다.


각 항해등은 모두 한쌍으로 구비되어서, 위아래 두 개가 한쌍으로 설치하여 한 개가 고장이 났을 경우 즉시 나머지로 대치하여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체크 결과 전부(前部) 마스트 등 두 개 모두가 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이 발견되어 전구를 갈아 끼우려는 과정에서 등 안에 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까지 발견한 것이다.


물기를 모두 닦아 내주고 건조한 다음 전구를 끼웠지만, 브리지의 배전반에서는 계속 단락 된 경보가 울린다. 담당자인 3 기사를 불러 올려 수리를 진행하니 그곳으로 나가는 리레이만을 다시 바꿔주었는데, 경보음이 꺼지고 불이 들어온 것으로 나타나서 실제 불이 들어왔는가는 확인하지 않고 수리가 끝난 것으로 치부하여 끝을 내었다.


밤이 되었다.

중국을 향해 항해하는 길목이 되는 서해안의 남쪽 끝자락 섬인 맹골도의 서쪽 외곽을 멀리 돌아 북서진으로 가던 중이다.


비구름 안개로 시계가 불량하여 레이더 두 대를 다 돌리면서 항해하게 되었는데 서로 만나서 가까이 지나치게 된 외국 배에서 우리를 부르더니 앞의 전장 등이 꺼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당직 조타수를 앞으로 내 보내 확인하니 진짜로 그때까지 전장 등이 꺼진 채 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화재경보가 울리기에 평소 때와 같이 또 누가 기관실에서 용접을 하여서 울린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확인을 위해 기관실에 전화를 거니 기관실 당직자가 용접기를 쓴 사실이 없다고 하여 화재 경보가 울린 장소를 알려주고 확인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계속 항해등을 위한 작업에 정신을 쏟다가 당장 수리가 안 될 것으로 판단하여 임시 조치로 일반 작업등을 항해등 대신 달아주고 아침 날이 밝은 후에 완전한 수리를 하도록 지시하며 작업을 중단하였다.


그때 브리지에 올라온 기관장이 아까 울린 화재경보는 실제 상황이었다며 전기 용접선을 사려둔 곳에서 불이 났었고 또 즉시 껐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떤 큰 사고가 나려면 그 전조 증상으로 작은 엇갈림이나 소소한 사고가 자주 나기 시작하는 경향을 가지는데, 이 번 일도 그런 현상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퍼뜩 들기에, 비록 선체 여러 부분에 대대적인 수리를 하려고 가는 길이긴 해도, 조심하기를 다짐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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