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함정에 빠진 고추잠자리들을 구해주며
우리 배에는 신선한 공기를 선내 기관실로 강제 순환시키기 위해, 선미부에 기관실 하우스로 공기를 공급시키는 공기 흡입 장치가 장착된 곳이 있다.
평상시 그 옆을 지나치려면 펌프가 돌아가는 강한 소리와 함께 공기를 빨아들이는 힘을 느끼며,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휩쓸려 끌려가는 현상조차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금항 중국을 향해 항해하는 뱃길이 이제 곧 끝 나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대련 항만과 입항에 대한 보고와 정보사항을 주고받을 수 있는 VHF 전화 통화 권역에 들어선 것이다.
옅은 안개가 좀 뿌옇게 끼이고 공기조차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날씨이건만,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많은 잠자리 떼가 배 위에서 군무를 추듯 날고 있다가 바로 기관실 공기 흡입구 부근에서 느닷없이 끌어들이는 센 바람결에 속절없이 빨려 들고들 있다.
기관실 내부를 환기시키기 위해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강제로 빨아들이는 통풍관 흡입구는 필터를 겸한 커버 철망이 있는데, 그곳에 달라 붙여져서 그냥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걸로 겨우 살아 있는 걸 표현할 뿐, 빨려 드는 공기의 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아내와 둘이서 선내에 성수를 뿌리며 그곳을 지나치다가, 그렇듯 수난당하고 있는 빨간색도 선명한 고추잠자리 한 마리를 보고 떼어주었는데, 그대로 푸르르 날아 올라 살아서 돌아간다.
녀석은 붉은 혼인색으로 단장하고 배우자를 만나 곧 자신을 닮은 2세를 남길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다가 자신은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형편이었는데,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타나서 날 수 있는 길로 돌려주니 허공 중에 떠올랐지만 도대체 어찌된 건지 영문이나 알고 있을까?
우리 인생에서도 저렇듯 알지도 못하는 거대한 힘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겠구나! 불현듯 들어서는 연상에 이들을 좀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다.
그곳에 붙어있던 모든 잠자리를 한 마리씩 조심스레 떼어서 날려주니 3분의 2 쯤은 살아서 날아가는데, 나머지는 그냥 바닥으로 떨어졌고, 개중에는 푸시시 가루되어 허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것도 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시간이 그곳에 붙은 채 흘러갔기에 강한 공기 흡입류에 납작하니 쭈그러지고 말라 비틀어진 죽은 물체로 변한 것들이다.
잠깐 그런 그들의 죽음에 애도하며 더 이상 꾸물거리듯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급하게 브리지로 올라가야 할 일이 생겼다. 항만당국에서 선장을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대련항만 당국은 예정했던 2번 투묘지에 들기 전에, 1번 투묘지로 변경해서 투묘하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대로 따라 한다. 1135시였다.
이윽고 정박을 끝낸 배 옆으로 입항 수속관리들이 승선하려는 작은 통선이 다가온다.
붉은색 바탕 기폭에 노란색 큰 별 하나에 작은 네 개의 노란 별들이 수놓아진 중국 국기를 달고 있는 배다.
사진 : 오성홍기
중국 국기라는 말을 했지만, 예전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중공기라고 하며 감히 알아보려 거나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든 기피 대상이던 오성홍기이다.
광복 전 시절에는 어느 정도는 오갈 수 있었던 이웃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어린 때 여서 가 볼 수 없었고, 광복 후 공산정권이 패권을 잡은 후부터는 꽉 막힌 불편한 이웃으로 관계되며-아니 한국전 이후는 아예 서로 원수 국가가 되어- 살았던 곳에 내 자의로 찾아갈 수 있게 다시 변화된 세월을 만난 감회가 남다르다.
해양대학 1기생들은 그들 항구(상하이 등에)에 기항하는 실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우리도 그런 실습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할 수 없는 상상을 해양대학에 다니면서 여러 번 해봤던 기억도 떠 오른다.
이제 그런 금지되었던 항구에 기항할 수 있는 세월이 된 것이 반갑고 새로운 땅에 온 감회가 크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동안 주눅 들었던 이 나라에 대한 감정이 그들의 국기를 보는 순간 섬찟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떨떠름한 마음을 갖게 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내 기억에는 중국 기라고 하면 이제는 타이완으로 표기하는 예전 중화민국의 청천 백일기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이제 그 이들이 서로 자리바꿈을 하게 된 것이다.
사진 : 청천 백일기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관리들이 올라와서 떠들썩하니 수속을 진행한다.
6-70년대에 그런 패턴으로 수속하던 한 때를 우리나라 역시 가지고 있었던 기억은 그 옛 모습을 재현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을 이끌어 낸다.
모든 입항수속이 끝나 수속관리들은 떠나갔다.
배에 남은 도크 관계자와 회사의 감독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 배의 수리기간이 70일이나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