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녀석

남의 전화를 사용하면서도

by 전희태


B620(9609)1.jpg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든 아내의 모습.

독크 당국이 배 안 미팅룸에 준비해 준 전화는 공중전화 카드로 국제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따로 요금 지불을 안 하고 회사가 지불하는 방법도 있다던데, 우리는 그런 방법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공중전화카드를 사서 국제전화를 사용했다.


독크 수리 담당 관계자들과 수시로 만나서 작업의 진도를 체크하고 작업의 지시도 나누는 MEETING ROOM에 어정쩡한 키를 가진 젊은 친구가 들어섰다.


독크에서 일하는 인부로 보이는 데, 이 사무실에-아니 우리 배에-, 특별하게 용무가 있어 들어온 것 같지는 않은 폼으로 들어서고 있어 좀은 의아한 눈길을 보내며 왜?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모두들 쳐다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주시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 태연히 의자에 앉더니, 앞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어 열 번이 넘는 전화번호를 눌러대며 통화를 시도한다.


도대체 남의 바쁜 사무실에 들어왔으니 미안한 감을 표시하고 양해를 구하며, 전화를 걸어도 시원찮을 형편인데, 모든 걸 무시하고 당연히 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떳떳하게 행동하는 듯 한 그런 태도로 통화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그런 그 친구의 태도에 기가 막혀 잠깐 머뭇거렸지만, 누군가 바쁜 우리의 일과가 있으니 빨리 전화를 끊어 달라고 말하니, 잠깐 하면서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글을 쓴다. 숫자 5이다. 막말로 5분간을 더 걸고 나서 끊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게 그는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통화를 하고 있다.


지금 자신에게 걸려 올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독크의 기사가 좀 더 다그치는 채근으로 통화를 당장 끝내도록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


그제야 마지못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전화를 끊으면서도 자신이 카드로 전화를 거는 거라는 점을 강조하듯 카드를 들어 보이며 무어라 말을 하더니, 나중에는 신경질을 내며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은 얼굴로 나가 버린다.


뭐 우리 배에 자주 나타나지 않으면 좋을 사람으로 판단되니, 그가 화를 내고 나가든 어찌 나가든 빨리 자리를 피해 우리 배를 나갔다는 사실만이 반가운 모양이다. 그의 행동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무실에 남아 있든 모든 사람들이 그런 퇴장에도 오히려 시원하단 표정들을 지어 보이고 있다.


게다가 그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태도는 그럴듯한 속임수를 쓰기 위한 행동이라 여기는 눈치이다. 즉 자신의 필요를 위한 장거리 전화를 돈 안 들이고 하려고 나타난 독크내 얌체족의 일인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생활한 게 며칠 되지 않으니 전부 다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곳 현지인의 생활 태도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른 점 중 한 가지가 공중도덕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음식점에서 더우면 그대로 맨 살이 나오도록 웃통을 벗고 태연히 식사하는 모습도 종종 만나는데 심지어는 큰길에서도 그렇게 활보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하여 공산주의의 폐해인 공짜를 좋아하는 습성 또한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러니 오늘의 그 사람도 실은 본선에 와서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어 보려는 사람임을 알아본 그런 눈에 주시당하다 보니 그 역시 곱지 않은 눈길을 느꼈을 테고 도둑놈 제 발 저려 그런다고 제 먼저 신경질 내고 그리 나간 것이네 추측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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