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성아! 2001년 07월 18일 제 4 신.
어제 점심 무렵 독크 안벽에 접안하였단다.
어제 오전, 아빠 배가 며칠간 머물고 있던 바다에 뿌옇게 밀려드는 옅은 안개로 주위에 닻을 내린 배들 몇 척이 숨바꼭질을 하듯 보였다가 안보였다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지.
갑자기 전화를 받은 아빠가, -'이제 독크로 들어간다!.' 하며 바쁘게 옷을 갈아 입고 방을 빠져나가셨는데, 조금 후 요란한 벨 소리가 울리고 나더니 '스텐바이 올 스테이션!' 하는 방송 소리가 세 번 들리더구나.
배가 며칠 만에 움직이고 있잖아. 창문 쪽에서 망원경으로 지나가는 배를 이리저리 살폈지. 얼마 지난 후 바닷물이 시꺼멓게, 아니 오염이 된 것같이 더러움을 느끼게 하는 속으로 빠져들었는데ㅡ,
참 묘하더라... 육지 가까이 붙어서 이렇게 큰 배가 좌로 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잘도 가는 거야.
집들이 보이고 조선소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해도 배는 여전히 방향을 바꾸며 그렇게 잘도 가는 거야.
얼마를 지났을까 항로 옆으로 부이(BUOY)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야 우리나라에선 보지 못한 바다의 밭이라 고나 할까?
옛날 우리 공장에서 만든 유리로 된 둥근 부표를 닮은, 일본말로 '우끼 다마'라고 하던 그런 부이가 보이는 것이야.
셋 성아!
옛날 엄마 친정 전성기가 한순간 주마등이 되어 지나가잖니. 40년, 아니 50년도 더 지난 그 먼 시절 우리 공장에서 저런 걸 만들어 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로 좋은 우끼 다마(浮球) 생산 공장이었지.....
잠깐 너희들 외할아버지인 나의 아버지 HBS 사장의 멋진 모습도 지나가고...
참 그 바다 밭이 과연 무엇을 키우는 곳일까? 조그마한 배에 어부들이 타고 부이를 손질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저 더러워 보이는 물에 과연 무엇을 키우고 있을까? 궁금증이 생기더구나.
사진 : 항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양식장 모습.
배가 조선소 안벽에 들어오기 바로 앞까지 그렇게 넓게, 배 지나가는 길만 조금 남겨둔 바다 위에서 키우고 있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셋 성아!
나중에 그곳이 전복 양식장이라고 누가 그러더구나. 참 기가 막혀서. 저 더러운 물에서 키워 혹시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아닌지. 수입 전복은 절대 사 먹지 말자. 특히 중국산은-. 좀 너무 하는 것 같은가? ------
셋 성아! 너네 아빠 멋있지 않냐?
이렇게 큰 배를 그 좁은 통로 끝에 있는 이곳까지 무사히 안착하게 했다니. 사실 이 엄마는 이쪽저쪽 혼자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조금은 불안했거든 기도까지 할 정도로.....
아무튼 들어왔다. 수리 독크 안벽으로...
저녁이 되니까 선원들이 여권과 상륙증을 찾아들고 삼삼오오 상륙하는데 아빠 엄마는 그냥 배에 남아 있었다.
바쁘게 밤에 나가면 무얼 하겠느냐? 아직 많은 시간이 이곳에서 남아있는데...
어떻게 지내니 날씨는 어떠냐? 무덥지? 할머니께서는 여전 건강하시지? 그냥 갈 수 있는 곳이면.... 허긴 엄마 생각에는 달리안 항에서 배 타면 인천항까지 하루 밤이면 간다는데....
아빠한테 물어보니 그것이 쉽지 않고 수속이 매우 복잡하다 더구나. 상륙 시 외박은 절대 안 되고 새벽 2시까지는 배에 들어와야 된다는 게 이 나라의 방침이라는구나.
큰애야!
'운전면허증'따는 것 네 외숙모한테 물어보고 다시 연락하자. 지난번 같은 실수는 없어야 하지 않겠니?
둘째아!
엄마 심부름했는지? 우짜 지당 간 더운 날씨에 몸조심하고 할머니께 안부 여쭤 올려라.
그리고 이 편지 읽어드리고..... 잘 있어라. 모두 보고 싶구나.
네 번째로 엄마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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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달리안 항의 첫 상륙에 나섰다. 7월 19일
부두에 내려서서 우리 배의 좌현 2번 창의 외판을 갈아 끼우려고 산소로 불어내어 뜯어내는 작업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밖으로 향했다.
완전히 안으로 굴곡된 외판을 잘라내고 새 철판으로 그 자리를 메우는 작업은 지난번 맞이했던 태풍 UTOR가 할 켜 준 상처를 치료하는 작업이다.
착잡한 심정으로 그 작업 모습을 잠깐 지켜보고 나가는데,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구나.
초소에서 근무 중인 공안원으로 상륙자의 상륙 카드와 여권(선원수첩)을 검사하여 몇 시에 나간다는 기록을 한 후 나가는 걸 허가해주는 데 나는 여권으로 아빠는 선원수첩을 지참하였는가 체크를 하더구나.
초소를 지나 한참을 걸어 나와 수리조선소 출입 정문에 다다르니 몇 사람의 오토바이 호객꾼이 보이고, 자가용으로 영업하는 택시 운전자도 있더구나.
이미 어제 상륙해서 나가보았던 교포 승조원 김군의 앞장선 길 안내와 교통정리로 한 택시를 골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 도달할 무렵 저녁 아홉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는데, 아직 문을 열고 있는 백화점이 있다며 안내를 해주기에 가보았단다.
여느 자본주의 국가의 화려한 백화점과 별 다를 바 없는, 외관을 가진 백화점엘 들어가 진열된 상품들을 둘러보면서 이곳 달리안과 정식의 첫 대면을 하였다.
중국의 화장실이 열악하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을 했었는데, 백화점 내 화장실은 서양식의 아주 깨끗한 흠잡을 데 없는 화장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