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다섯 번째 편지

조선소에서 첫 상륙을 하며

by 전희태


달리엔04.JPG


셋 성아!

오랜만에 땅을 밟아 본 날이구나. 바깥구경을 하려고 저녁 식사 끝나고 8시가 넘은 시각에 배에서 내려 땅을 밟아 본 거야.

참, 배에서 내리는데 사다리가 어떻게 생긴 건지 아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이런 사다리는 처음 본다.

배가 접안하고 있는 독크 부두 위에 세워진 네모형의 타워 가운데에다 5층을 만들어 각 층간에 지그재그로 층계를 설치하여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어 있는데, 맨 꼭대기 층에 오르면 배위로 건너가게 발판을 겸한 다리가 있더구나.


그야말로 암벽 타는 것 같은 기분을 충분히 불러일으키게 끔 높다란 배의 갑판과 타워 사이의 허공에 걸쳐진 건널목 다리이기에, 그 다리를 딛고 건널 때면 바닥의 틈새로 내려다 보이는 독크 부두 바닥에 눈이 가는 순간 ㄸ구멍이 간질거리며 마구 조여드는 공포마저도 갖게 된단다.


길이는 4미터쯤 되고 1미터 정도 되는 폭을 가진 그 다리의 양쪽에 추락방지용 핸드레일도 있고, 그 중간 바닥에는 보폭 정도 간격으로 미끄럼 방지용 턱도 두고 있지만, 글쎄 그 턱이란 게 한 5센티미터 정도 돌출되는-너무 심하게 돌출시킨- 삼각형 막대 각재를 붙여 놓은 거야.


약 30센티 정도 보폭으로 있는 그걸 밟고 움직일 때, 그냥 미끄러지면 까마득한 높이의 아래에 있는 독크 부두로 떨어질 수도 있는 그런 형편이라 참말로 할 말이 없더구나.

그러나 너희 아빠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은 조심은 하면서도 별 불평하는 말은 하지 않더구나.


너희 아빠는 나와 같이 그 사다리 길로 들어서려 할 때, 자기가 앞장을 서면서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손을 붙잡아 주기만 하더구나.

그 타워를 다 내려가 안전하게 독크 옆에 내려섰을 때, 대부분의 다른 조선소에서는 그런 타워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운영한다는 말을 하여 이곳이 조선소로서는 조금은 후진 곳이란 뜻의 이야기도 해주더구나.


그렇게 배를 내려와서 조선소 정문을 나서니 '오토바이' 뒷자리에 손님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족속이 있더군. 그야말로 자가용(?) 영업이지 시내까지 40위안이라는데, 우리 돈으론 곱하기 120 하면 된다고 하더구나.


우리는 자가용 택시로 에어컨도 없는 구형 탱크 같은 소리를 내는 차를 150위안 (x120하니 18,000원 정도)으로 출입 왕복에 사용하기로 했단다.

시간상으론 시내까지 약 50분 정도였고 우리가 볼일 다 볼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거야. 그리고 다시 그 차를 타고 조선소 앞까지 돌아오고---


일단 대련 시내를 차를 타고 대충 돌아보았는데, 잠깐 사이지만 셋 성아 놀랬단다. 왜냐고? 공산주의 국가가 지금 우리나라 이상 퇴폐적인(?) 것 같더구나.


옷도 어깨 훌렁 없는 옷.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웃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자주 눈에 뜨이더라.

네온사인은 없지만 빨간 간판 빨간 불빛 그리고 집들은 서양식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그런 집들도 많더라.


우리를 앞장서서 시내로 안내한 사람은 우리 배의 중국 교포 선원이었다. 통역을 겸해서 같이 나가도록 한 것인데, 그가 현지인과 이야기를 지껄이고 나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알아 들어야 하는 우리는 바로 벙어리였지.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하더니,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적당한 눈치로는 금세 알아챌 수는 있더라.


광장이 끝나는 곳에 가니 대련에서 제일 크다는 백화점이 있고 KFC도 있었다. 백화점 앞 진열대에서 중국 소수민족이 양초를 사용하여 염색해서 만들었다는 벽걸이 용 염색천 두 장을 샀다.

60위안 달라는 걸 50위안으로 깎았는데 우리 돈으로 6,000원이지. 물가는 우리나라의 1/3 정도라고 하더라. 너무 늦게 시내에 나와서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그걸 사고 백화점을 나왔지.


그리고 조선족 교포가 운영하는 '은하수'라는 단란주점에 가서 맥주 한잔 했는데, 같이 동행한 기관장님이 냈다.

배로 돌아오는 밤 12시. 지나치는 길옆엔 집들이 이어져 많은데 모든 창에서 불빛이 없는 거야, 길거리가 얼마나 어두운지 놀랬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그런 거라더군.


배로 다시 들어서며 진짜로 놀라운 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 배가 지난번 광양 들어오기 전에 만난 태풍 때문에 배 양쪽이 움푹 들어갔던 거 말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갈비뼈가 나간 거지. 수없이---

그런 배를 수리하려고 우리나라에서 이곳으로 무사히 온 것이 기적 같다고 했더니, 아빠는 아니라는구나.

극한 상황까지는 갔었지만, 그래도 전 선원이 열심히 대처하였으며, 운까지 따라주어 그리 된 것이므로 결코 기적이 아니라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기적적인 생환이 맞을 것 같구나.


셋 성아! 지금 자세한 기억은 나진 않지만, 아빠네 회사 배가 아무것도 남긴 것 없이 사라진 사건이 예전에 있었는데, 바로 아빠 배도 그런 일을 당할 뻔 한 사건이었던 거 같으니 말이다. 하느님께 감사한다. 너희의 아빠, 내 남편이 무사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신 것을---


이제 배를 독크 안벽에 대어 놓고 움푹 들어간 철판을 모두 다 도려내고 배를 지탱해주는 갈비뼈 같은 프레임도 상한 것은 모두 다 간다고 하는데, 우리가 상륙하려고 내려갈 때 보니, 그 철판들을 절단해 내고 있어서 배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더구나! 정말 황당한 기분이 들 정도였지.

근데 지금 상륙에서 돌아와 들어서며 보니 그곳의 작업을 안 하고 뚫어 놓은 채로 어둠 속에 그대로 두고 있더구나. 아마도 새 철판으로 갈아주는 작업은 밝은 날에만 하려는 모양 같구나.


그래서 원래는 25일 간으로 잡았던 수리 예정이 두 달 정도로 늘어나는 모양이지만 나로서는 자세히는 모르는 일이다.

단지 이 곳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너희 아빠와 같이 지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참 좋지만, 너희들을 못 보고 집에서도 멀어져 있는 게 좀 안타깝구나.


어떻게 지내니?

큰애 네 말을 들으니 무더워서 모시옷을 입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렇지? 척하면 알잖니...

할머니께서는 왜 교회에 못 나가신 거니?

너희 막내 삼촌 수술한 것은 어찌 되었니?


둘째야! 엄마 회사에 엄마 통장 가지고 가서 자동 이체하라고 한 것 했는지? 보험료 엄마 것 처리는 했는지 모두 궁금하구나. 자식 너 왜 편지 않쓰냐? 형한테 (봉투) 적어주고 왔잖아 빨리 가서 일 끝내 알겠지?

할머니에게 아빠 엄마는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 꼭 전하고 너희들도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고 잘 있어라. 엄마가 다섯 번째로 보내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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