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간 기차를 타고 찾아온 가족
비가 오고 있다.
안개가 심심찮게 끼어들면서 날씨를 조절하는 데, 낮이 되면서는 제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침 샌드 브라스팅(SAND BLASTING)(주*1)을 준비 중인데 비가 오니 그 일은 자연스레 순연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라이 독킹을 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비가 내리는 속을 기관부 사람들은 회식을 하러 단체로 시내로 나가고, 갑판부 인원들은 어제 단체 회식을 한 관계로 오늘은 모두 개인적으로 상륙을 하여 행동을 하기로 한다. 그렇더라도 결국은 같은 곳으로 모였다가 또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이 들어오겠지만...
중국은 자기 민족의 고유한 의상을 입은 국내 소수민족을 이렇게 화폐에다 그려 넣어 주고 있다. 전면에 조선족 아낙이 한복을 입고 있는 포즈로 그려진 초상이 장족이라든가? 하여간 다른 소수 민족 여인의 초상과 같이 들어 있는 2각짜리 지폐가 있는데, 바로 그런 표현을 받고 그런 삶을 중국에서 살고 있는 여인네 중의 한 사람인 우리 배 선원 부인 한 사람이 딸과 같이 남편을 찾아 지금 우리 배로 오고 있는 중이다.
멀리 연변에서 21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찾아오는 아내와 딸을 맞은 갑판부의 중국 교포(조선족) 승조원인 이군은 가족이 본선에 승선해도 좋다는 내가 써준 허가서를 지참하고 관해 관청을 찾아다니며 수속을 하느라 한나절을 다 보내고 오후 3시에 도착한 가족을 만나 겨우 배로 데려왔다.
작년 10월에 헤어진 후 9개월여 만에 처음 만나게 되는 딸에 대해, 평소 자랑삼아 이야기해준 바에 의하면 햇볕에 그을린 자신을 향해, -아빠 얼굴에 왜 때가 많아졌어? 낯을 씻어!라는 말을 했다던가.....
처음 보는 배 안의 분위기에 아이 다운 머뭇거리기는 태도를 보이긴 해도 똑똑하게 행동하는 딸아이가 귀엽다. 그러나 장장 21시간이나 걸리는 기차를 타고 찾아온 그들 가족이 혹시나 관의 고압적인 처사로 배에는 들어와 보지도 못하는 상봉을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
그리되면 가외로 여관에 들어야 하니 돈을 벌기 위해 나선 그 가족 입장에선 작은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별 탈없이 배에 올라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쨌거나 모처럼 가족이 찾아왔는데 개인 화장실도 없는 방에 머물게 할 수가 없어 보여 마땅한 빈방을 찾다 보니, PILOT ROOM이 그나마 가장 나은 곳으로 여겨지어 그 방을 사용하도록 허가해 주었다.
이렇듯 본선에 선원 수출로 승조하고 있는 중국 선원(조선족)들이 본선이 수리를 위해 이번 달리엔 기항을 하는 황금(?) 같은 찬스에 가족이 찾아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선장인 나의 지시 아래 이루어진 일이니, 만약 무슨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은 일단 나한테로 올 수 있는 일이라 떨떠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처럼의 기회를 잡아 가족상봉을 한다는데 모른 체 할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주*1 : 샌드 브라스팅(SAND BLASTING). 선체에 끼인 녹을 제거 하려고 압축 고압공기를 모래와 같이 불어 주 어서 선체 철판을 두드려 주면, 녹이 깨끗이 제거된다. 이런 작업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