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먹으면서
거의 기대는 걸지 않고 그냥 찾아보기로 한 성당이었는데, 이 곳 달리안 시내에 성당이 있단다. 그것도 꽤 오래된 성당이란다.
마침 시내를 향해 밖으로 나간 시간인 10시경에 자가용 택시운전사의 전화로 걸어본 연락에 11시에 한국인들이 들이는 미사가 있다는 정보도 입수하게 되어 일로 성당을 찾아 나선 나들이가 되었다.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성당에 대한 기대가 많은 모양이다.
그들이 알아낸 주소지를 향해 가는 택시 안에서 지나치는 풍물을 보며 공산당이 지배하는 이곳의 성당 모습은 어떠할까를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다.
열심히 찾아 나서서 길안내를 해주던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그 앞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길을 묻는다.
그 동네 어디에 성당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들도 확실한 이야기는 못해주지만 주소를 듣더니 저기 어디쯤 일거라는 식의 이야기로 손짓 발짓을 해가며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를 돌려서 한 5분 찾아 나선 후, 어느 한적한 주택가 길에 들어섰는데 십자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첨탑이 힐끗 보인다.
저곳인 모양이다. 신나게 소리치며 그곳에 도착 차를 내리니 大連 天主敎會란 문패를 붙인 제법 오랜 년 수를 지닌 모습의 성당이 옆에 있는 아파트 높이만큼 솟은 첨탑을 갖고 그 아래에 天主敎堂이란 글자를 붙인 채 버티고 있다.
大連市 西崗區 西安街 31號 (森茂大厦뒤편)이라는 게 주보 앞에 적혀 있는 주소였다.
마침 미사 봉헌이 시작되고 있는지 입당 성가가 울려 나오고 있어 무조건 뛰어들다시피 입장하고 보니 한국인들이 모여서 들이는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뒷자리에서 미사에 참여하며 살펴본 바로는 한 40명 정도의 교우가 참여하고 있는데 미사 집전의 신부님은 중국인 신부님이고 전례는 한국인들이 진행하며 보는 것으로 중국말로 진행하면서도 한국말을 뒤쪽에 끼워 넣는 편의를 주고 하는 것 같다.
수원교구에서 도움을 주며 심양(선양,옛 봉천시)에 있는 한국인 신부님이 매달 셋째 주일날 오셔서 미사참례를 드린다는 이야기이다.
미사가 끝나자 새로 미사에 참여를 한 교우로 우리를 지목하여 양해를 구하면서 전례를 보던 사회자가 앞으로 불러 낸다.
아내와 같이 앞으로 나가 나의 소개를 하였다. 이어서 교우들이 모인 만남의 모임에서 떡과 음료수를 들은 후 성가 연습으로 세 곡을 부르며 얼굴을 익히고 다음 주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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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서
점심시간이 되어 길 안내로 데리고 나섰던 중국교포인 기관부 김군의 안내로 기왕이면 평양냉면을 먹자고 작정하고 찾아 나선 평양관에서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는 접대원 아가씨들과 몇 마디 나누었는데 첫말이,
-서울서 오셨어요? 였고 제법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들이 갖다 준 메뉴판을 보다가 그냥 냉면을 먹으러 왔다면서 냉면을 주문하니, 꿩고기가 좋으니 꿩고기 찜도 먹어보라며 추천 아닌 추천을 한다.
잠시 후 다시 찾아와서 김치는 안 들겠냐고 물어와 꿩고기와 김치도 시키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 것은 잊고 있던 고향의 정서를 혹시나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의 부모님의 고향이 평안북도 K 군이고 나의 출생지도 그곳이기에 한번 가져 본 애틋한 미련 인지도 모른다.
평양 근교의 배달산 이라던가 하여간 산 이름이 쓰여있는 생수를 가져다 찻잔에 따라주며 몇 가지 반찬을 가져다주더니 김치가 제일 먼저 나왔고, 이어서 꿩고기 찜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평양냉면이 나오는데 신선로같이 받침이 있지만 상부가 편편한 모습의 그릇에다 냉면이 나왔다.
자칫 흔들리거나 그릇이 좀 기울게 되면 여지없이 냉면 육수가 흘러넘치는 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한 냉면 그릇에서 우선 숟가락으로 육수를 떠 마셔보았다.
기대가 크기 때문이었을까? 생각하고 있던 맛만큼의 그런 훌륭한 맛이 아니라 좀은 실망스러운 맛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아내가 덜어준 면까지도 다 먹고 나서 아직 반도 먹지 않은 잔가시가 많은 꿩고기 찜을 다시 뒤적이어 몇 점 더 먹은 후 수저를 놓았다.
그렇게 꿩찜은 많은 가시가 젓가락질을 방해하였고, 냉면은 육수와 면이 그릇에서 흘러내릴까 봐 걱정하며 먹느라고 음식 맛을 즐길 겨를이 없어 실망을 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곳도 되기에 실내 광경에 눈을 돌리어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세 곳의 식탁에 손님이 있었는데, 우리가 들은 후 혼자 왔던 사람은 식사를 끝내고 나가고, 새로 젊은 부인이 다섯 살쯤 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기다리더니, 남편으로 보이는 젊은이와 시아버지로 보이는 60대의 할아버지가 들어와 식사를 주문하며 아이의 말 재롱을 가운데 놓고 설왕설래한다.
그때까지 틀어 놓고 있던 비디오는 춘향전이었던 모양인데,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면서 노래방 노래 체제로 변하였다.
서울서 왔다는 우리를 의식한 의도적인 바꿈인 것으로 느껴진다. 한참 후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리랑 노래가 여자의 육성으로 흘러나온다.
접대원 아가씨 중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구성지게 이북식 가창으로 한 곡조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 나왔지만, 나나 우리 테이블에서는 치지 않았고, 외국 여자를 포함해 세 명이 식사하던 구석 테이블과 그들 접대원 동료 아가씨들의 박수소리였다.
대충 분위기를 보면서 더 이상 앉아 있기가 싫어져 일어 나서 계산을 하는데 300 위안이란다. 돈을 내고 나오는 아내의 첫말이 '뭐가 그렇게 비싸'이다.
나는 손님에게 은근히 강매하듯이 시켜서 나온 꿩 요리가 영 맘에 안 들었고 그들이 행한 일종의 바가지 씌우기식의 손님 접대 풍조도 마음에 안찼다.
다시는 북한 음식점에 들어가나 봐라. 툴툴거려지는 불평을 속으로 삭이는데,
-변소가 우리나라 같이 향수 냄새가 나는 게 아니라 지린내가 나요.
먼저 화장실로 갔던 아내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비싼 점심을 먹은 평양관을 나섰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련 탐사에 들어가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가장 쉽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이 있고 쇼핑몰과 백화점이 있는 곳에서 필요한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하기로 한다.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해준다는 사진 찍기를 처음부터 컴퓨터로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참여해보는 의미로 찾아갔다.
혼자 찍는 사진이라 해서 기왕이면 둘이서 찍겠다고 했더니, 10위안을 더 내야 한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다음엔 흑백사진으로 뽑아준다고 해서 그것도 컬러로 요청하니, 또 10위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그 젊은 처녀를 보며 참으로 교묘하고 악랄(?)하기 조차한 그녀의 상술에 혀를 두르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찌하겠나! 그렇게 하라고 할 밖에.
한 5분 이상 기다려서 뽑아준 사진은 컴퓨터의 사진으로도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의 허름한 인상을 주게 하는 두 사람의 사진이었다.
이렁저렁 시간이 흘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와서 이번에는 만두와 찐빵을 먹기로 하고 찾아간 100년이 넘는다는 식당이다.
주문을 받는 아가씨가 또 필요 이상의 음식을 주문하게 만드는 상술을 보며, 씁쓰레한 느낌을 받았지만 가격은 평양관의 반도 되지 않아 그런대로 지나쳤는데 맛도 괜찮은 편이다.
식사하러 온 손님 중에 더워서인지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웃통을 완전히 벗더니 음식이 들어와도 그 모양새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희한한 풍습을 보는 느낌이 든다.
거리에서 종종 그렇게 맘대로 웃통을 벗은 남자들을 볼 수 있는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순전히 돌 쌍놈들>이다. 하지만 이곳의 풍습이 그걸 용납하고 있으니 그저 웃고 지나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진 : 백열전구 여럿을 함께 달고 있는 모습이 독특한 생김새의 가로등이 거리 곳곳에 서있다. 승리 광장을 찾아가던 길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