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안 성당에서 미사참례
셋 성아! 07월 23일
주일 미사 참례를 하였단다.
엄마 아빠도 이곳 중국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하였단다. 어제 아침 10시에 배에서 출발하여 11시 미사가 있다고 운전기사가 성당에 알아보고 이야기했다.
그 차로 성당을 물어서 가보니 마침 우리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드리는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주일날 하루에 한 대 밖에 없다는데 교우가 약 70명 정도라고 했다.
이곳 중국도 여름방학중이라 모두 휴가를 떠나고 약 40명 정도가 미사에 참여하고 있더구나.
신부님은 중국 분인데, 한국말과 중국말로도 하는데 알아듣는 말과 못 알아듣는 말이 섞여 있었는데, 전례 보는 분의 아멘! 하는 소리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껏 같이 동참하여 미사 진행을 하는데 느낌은 괜찮더구나.
미사 중간에 부르는 성가는 모두 교구청에서 보내준 우리말 성가 책으로 하여서 무척 반갑 더구나. 미사가 끝나니 오늘 처음 오신 분이 계신데 앞에 나와 보라고 해서 아빠 엄마가 앞에 나가 자기소개도 하고 인사도 했는데, 모두 손뼉 치며 환영을 해주 더구나.
우리처럼 만남의 방에서 다과를 나눈다고 가자고 해 따라나서서 떡과 음료수를 들면서 성가 연습도 같이 하였지. 성가 지도를 하는 분이 엄마와 같은 세례명인 율리안나 씨였다.
이곳 달리안 중앙성당은 인구가 540만 정도의 달리안 시에 하나밖에 없는, 100년 이상 되어 보이는 성당 건물인 것 같은데, 사목 위원에게 역사를 물으니 잘 모르겠다더라.
한국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11시에 성당을 빌려 미사를 드리는데 그때 봉헌되는 한국 교우들의 봉헌금으로 성당 빌려 쓰는 값을 지불받아 중국인들에게 포교하는데 도움을 받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 같더라.
선양(예전의 이름은 봉천으로 이곳에서 기차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단다.)에는 수원교구에서 신부님이 세분 수녀님이 세분 와 계신단다.
그리고 매달 세 번째 주일날 한국 외방선교회 신부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신 단다.
이곳에 있는 동안 매주 미사 참여를 하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배에서 그곳 성당까지는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생각지도 바랄 수도 없었던 곳에서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예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지 모르겠구나
셋 성아.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니? 할머니께서도 안녕하시고?
이곳 중국도 얼마나 더운지 미사를 드리는 동안 아버지는 땀을 많이 흘리셔서 목욕을 하고 난 사람 같이 되셨단다.
할머니 전화 목소리는 괜찮으셨는데 더워서 고생이 되신다고 말씀하시더라. 너희들이 할머니께 성화를 끼쳐서 더욱더 더위에 힘드시게 하지 말 거라. 7성이 들도 방학이 되어 왔겠구나! 모두가 보고 싶어 진다.
막내도 연락은 왔는지? 둘째도 더운데 여전히 땀 뻘뻘 흘리며 힘들어할 거고... 참 비는 그쳤느냐. 첫째는 요즘 어떠냐? 병원은 다녀왔느냐?
셋 성아. 어제 미사를 보고 난 후 한 4시간 정도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 점심은 평양냉면 그야말로 평양 사람이 하는, 김일성 배지도 달고 있더구나. 생각하고 기대가 커서 그랬을까? 맛은 하나도 없더라.
우리 동네 칡 냉면이 훨씬 더 맛이 좋은 것 같더라. 호기심에 한 번가 봤던 거지, 두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닌 것 같다.
저녁엔 이곳에서 백 년 가까이하고 있다는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 할, 한마디로 돌 쌍놈들이나 할, 짓인 웃통을 훌렁 다 벗어 젖힌 채 태연히 식탁에서 시킨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어 놀랬고 거리에서도 그런 사람을 종종 목격하였단다.
그렇듯 자기편 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이곳이 획일적인 공산주의의 나라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공산주의 시작한 지 80주년이 된다는 프랑 카드를 곳곳에 붙이고 있는 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놀라워한다.
그것이 공산주의에 앞서는 중국 민족의 오불관언(吾不關焉)을 보여주는 한 가닥 기질인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살펴보며 들른 백화점의 상품 수준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수준보다도 못 해 보이더라, 백화점 지하의 상가에서 차이나 옷을 물어봤는데 손으로 만든 수제품이라 비싸다고 하던데 780위안 달라고 하더구나.
하긴 양단으로 만든 것이며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자면 10만 원 조금 넘는 셈이니 우리나라에서 그런 가격으론 사기는 힘들 터이라, 그리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물가 수준으로는 고가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질이 떨어지는 기성복은 그 반값 이하이 더구나. 아빠는 기념으로 한벌 맞춰보라고 하시지만 생각이 여러 갈래로 아직 결정을 못 짓고 있단다.
자! 오늘은 여기서 안녕하자. 엄마가 일곱 번째 편지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