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의 출현

파도 속에서 만났던 어느 요트

by 전희태
황천중.jpg 황천 항해 중인 모습. 이 정도의 바다는 뷰포트 스케일로 8 정도임.


한 폭의 하얗게 빛나는 삼각형 돛과 나란하게 세워진 또 다른 삼각형의 파란 돛이 겹쳐서 팽팽히 바람이 오른 요트가 빠른 속력으로 저 멀리 우리 배 왼쪽의 파도 밭에서 나타나더니 어느새 가깝게 접근되는 양상을 띄우고 있다. 계속 주시하고 체크하여, 우리가 먼저 지나쳐 갈 것이란 판단을 하면서도 전에 뉴질랜드를 출항한 후 황천 속에서 미처 못 본 요트와 충돌하여 두 사람을 죽게 하였고, 생존한 여자와의 재판으로 인해 힘들었던 어떤 원양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조심스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VHF 전화가 소리를 낸다.


여자의 목소리로 우리 배를 부르는 말이 흘러나오는데, 바로 지금 관찰하고 있는 그 요트에서 부르는 것이 틀림없다. 응답하고 나갔으나 그 쪽에서의 이야기가 우리가 흔히 쓰는 해사영어가 아닌 좀은 생소한 빠른 말이라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충돌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란 걸 알기에 조심스레 계속 지켜보며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시행한다.


우리 배 속력이 접근하는 요트의 속력을 앞질러서 잘 빠져나가는 걸로 확신되기에, 좀 더 선수를 오른쪽으로 크게 틀어 주며 장성 일발(주*1)을 울려 우리의 뜻-우리배가 요트의 선수쪽을 먼저 지나쳐 가겠다는-을 명확히 알려 주었다. 요트도 더 이상 다른 말없이 자신의 상태를 유지시킨 채 가까이 지나치려고 한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만났던 요트

그 요트의 진행 방향이 바람을 거슬러 전진하는 주행 상태였기에 대지 속력은 빠르지 못했지만 대수 속력은 제법 빨랐고, 우리는 4시 방향의 바람과 순조의 해류를 타고 달리기에 14 노트의 빠른 속력이었다.


국제충돌예방법상, 당시 그 요트는 우리 배의 침로를 감안해주며 협조동작을 가지고 무사하게 항과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우리 배도 그 배의 돛에 영향을 주는 바람 길을 막지 않고 지나가야 할 의무도 있기에, 미리 충분한 거리와 시간을 가지고 명확한 의도를 표시하며 지나려고 취한 행동이었다.


무사히 지나치면서 보니 그 배는 돛이 하나 더 있는데 그 돛은 사용치 않고 있었다. 우리 배를 부를 때는 여자의 목소리였는데 중간에 남자 목소리도 끼어든 걸로 봐서 부부가 함께 승조원으로 대양 항해를 하려는 요트로 짐작되었다. 우리 배로서는 직접 안 보면 파도로 느낄 수 없는 풍력 5 (주*2)정도의 해상 상태이지만, 파고 2 미터 정도의 너울까지 있는 상황이라, 선수를 물에 처박았다가 떠오름을 반복하는 그 요트의 흔들리는 모습의 출현은 너무 애처로워 보인다.


그런 모습을 열심히 쌍안경으로 살펴보던 실항사가,

-배가 물에 빠진 것이 아닌가요? 하며 물어 볼 정도로 심한 피칭을 하며 달리고 있다.

이제 슬슬 저물어 가는 저 바다를, 바람마저 거슬러 가며 그 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낭만을 생각하기에는 현실에 와 닿는 바람과 파도가 수월치 않은 저 난 바다를 향해 떠나는 그 요트의 돛 위로 순탄한 항해를 이어가라는 내 간절한 바람의 마음을 실어 보낸다.


혹시라도 항해 중에 일반상선과 요트가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어쩌다 불행한 어긋나는 만남이라도 갖게 되면, 그것은 바로 충돌사고로 이어진 불행한 인명 사고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없으려면 그 요트가 안전한 항해를 이루는 것만이 사고를 막는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니 그를 위해 빌어주는 내 마음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진심으로 빌어 주는 선심은 어쩌면 나를 위한 기도일수 있는 바람도 되는 것이다. 아니 나 - 우리배 - 를 위한 기도가 맞다.


주*1 : 타선에게 자신의 조타행동을 알려주려 할 때 기적이나 등화로 알려준다. 한번은 오른쪽, 두번은 왼쪽으로 돌린다는 뜻이고 세번은 엔진을 후진으로 사용함을 알린다.

주*2 : Beaufort Scale (뷰포트 풍력계급) 5 상태.

해상에서 바람과 해상상태를 육안으로 관찰하여 숫자로 항해일지에 적어 놓음.

영국의 해군제독 Beaufort가 1805년에 만든 해상의 풍력을 관측하기 위한 바람의 계급표에서 나왔다.

그는 범선에서 바람에 대한 돛의 상태를 기준으로 0에서 12까지의 계급으로 구분하였다.

그 후 이것은 항해자에게 널리 이용되어 오다가 범선에서 기선으로 바뀌면서 판정기준이 해면 상태로 바뀌었고 지금은 육상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완되었다.(오션루트 기상용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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