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경우를 은근슬쩍 제 것으로 만들어 보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손님이 찾아왔다는 현문 당직자의 전화 전갈에 매무새를 살피며 사무실 문 앞으로 나서려고 방문을 열었다.
흰색 스즈끼 작업복에 하얀 안전모를 착용한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다가 문을 여는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선급에서 온 검사관으로 지레짐작하며 우선 방에 들어오도록 발길을 돌려 안내를 한다.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하는데, 자신은 우리 배가 있는 옆 독크에 상가 되어있는 그리스 선주의 수리선에 파견 나와 있는 선주 대리인이란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선사의 해무나 공무감독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니, 우리 배가 수리하는 걸 보니 대단한 폭풍을 만났던 모양이라고 운을 떼며 이야기를 그쪽으로 돌린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우리 배의 이번 수리가 보험처리가 되는 수리가 아니냐고 묻더니 우리 배가 태풍과 조우했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느냐는 물음을 던져온다.
그건 무슨 일로 알려는 것이냐니까, 자기네 배도 폭풍을 만났는데, 그 일에 대한 서류상 처리를 본선에서 잘 안 해 놓고 있어서 우리 배의 것을 참고하고 싶어 그런다는 식의 말을 한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미 경계심을 품으면서 그의 말을 들었고, 우선 그런 일은 거절부터 하기로 작정을 한다.
본선도 수리기간 중에는 본사에서 감독이 나와서 근무하고 있으니, 그런 서류를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선외 반출은 그 감독들의 허가가 없이는 절대로 불가한 일이므로, 나 혼자의 결정으로는 알려 줄 수 없다는 말로 우선 거절의 말부터 한다.
그는 몇 번 더 간곡하게 요청을 하다가 완강한 내 모습에 포기하고 떠나가면서 우리 배의 감독들이 있는 사무실이 몇 호실인지를 물어온다.
당신이 우리 공무감독을 찾아가서 협조를 요청한다고 그 서류를 뵈어 주라고 할 줄 아시오? 그런 믿는 마음으로 공무 감독이 사용하고 있는 조선소의 사무실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 사람이 그리스 사람이라고 자신을 밝힐 때부터 나는 이미 그를 대할 태도를 부정적으로 굳히고 있었던 이유가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그리스 조각의 모델이 되고도 남을 만큼 생김새는 훤칠한 맵시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생각하는 바는 생김새만큼 수려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못 된다는 부정적인 소문이 우리 사회(해운계) 전반에 걸쳐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 계에서는 그리스 사람들만큼 돈에 인색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만큼 얼굴 두껍고 염치를 감춰두고 사는 사람들이 없다는 정평이 나 있는 것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자크린 여사와 재혼을 한 오나시스도 그리스 해운인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60년대 정서로는, 비운으로 타계한 타국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여자와 그것도 개인적으로 그들 부부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서슴없이 재혼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해 줄 수 없는 어딘가 상대방 주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라 비난하고 싶었던 일이다.
이렇듯이 오나시스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돈만 앞세우며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행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로, 일찍이 그들과 함께 일하며 경험해 본 해운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온 결론 아닌 결론으로 전해지고 있왔던 것이다.
오늘 나를 찾아온 그 그리스인 해무 감독도 어쩌면 자신이 맡고 있는 배의 수리비를 절감하려고 있지도 않은 폭풍우와의 조우를 만들어 내어, 결국 보험사기를 하려는 음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든 것이 아닌가 절로 의심이 들게 하는 것이다.
설사 그런 의도가 없이 다른 순수한 이유가 있어 청한 것이었더라도, 이미 그 나라 전체가 그런 눈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진 풍토가 그들에게는 불행인 것이다.
과연 우리 한국의 해운인은 어떤 모습으로 남들에게 비치고 있을까?
떠나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배웅해주며, 이제는 우리도 우리들의 위상을 한 번쯤 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건 아닐까?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