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도라지가 남겨준 저기압

수리한다고 배 전체를 맡겼지만...

by 전희태


B105(4440)1.jpg 독크 안벽에 접안하고 있는 배들의 모습


수리 조선소 부두에 묶여있는 상황이지만 귀를 거슬리는 바람이 지나치며 내는 딸깍거리는 소리에 절로 잠에서 깨어난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이다.


엊저녁 늦은 귀선으로 잠도 평소보다 늦게 자게 되었건만, 아무래도 이상한 소리에 자동적으로 감응되는 내 승선 중의 감각은 그냥 잠에서 깨어나게 만든 것이다.

아내는 숨소리도 고르게 깊은 잠에 빠져있어, 내가 일어 나는 상황도 모르고 있는 게 엊저녁의 상륙이 좀은 피곤했던 모양이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문밖으로 나서 우선 브리지로 향한다.


평소 승선 중일 때처럼 배안의 모든 일은 우선 브리지에 올라가서 살핀 후 결단 내리던 습관이 그런 발걸음을 내딛게 한 것이다.


태풍 도라지가 일찌감치 대만을 거쳐 중국 연안으로 상륙하더니 저기압으로 변신한 후, 계속 북상하여 오는 때문에 생긴 바람이 이곳에서도 작은 일을 치르게 하는 모양이다.


수리를 하느라 열어 놓은 통풍관을 통해 들리는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로, 풍속이 세게 분다는 감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브리지로 들어서기 바쁘게, 우선 풍향 풍속기의 지시기 앞에서며 고개를 들어 올리기부터 한다.


눈금을 쳐다보니 시속 40 knots 가 넘는 바람이 5시 방향에서 불어오는 것으로 확인하게 되는데, 우리가 계류한 반대편인 방파제 쪽 부두로 눈길을 돌리니 겹겹이 계류하고 있는 수리선들의 선수미 쪽으로 터그보트 두 척이 붙어서 열심히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배는 좌현 계류에 다섯 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그 배들은 우현 계류에 다섯 시 방향이니, 우리 배는 부두로 밀어붙이는 형상이고. 그 배들은 부두에서 멀리 떼어내려고 안달을 하는 형세의 바람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 배는 계류삭이 오히려 약간 늘어질 정도로 배는 부두에 잘 붙어 있지만, 만약 바람 방향이 바뀌게 되면 건너편 배같이 터그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우선 늘어진 계류삭이라도 감아 놓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수리를 위해 윈치의 유압용 기름을 모두 뽑아 놓은 상황이 걸림돌이 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DEAD SHIP 상태이다.


아무래도 유압용 기름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마침 갑판장이 당직 타수의 방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순 상부의 지시도 없는데 저렇게 나서서 일을 하려는 부하를 두고 있으니, 나도 마음 놓을 만 하구나! 하는 기분 좋은 감정이 솟아오른다.


수리를 위해 기름을 빼어 놓은 윈치와 윈드라스에 다시 기름을 채워서 긴급 시 사용될 수 있도록 해놓겠다는 갑판장의 말을 듣고, 그럴 필요는 없을 거라는 말을 해주며 다시 한번 배를 둘러보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계속 다섯 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니 부두에서 떨어지지 않아 안심이 되고, 또 조선소 측에서도 터그보트를 준비시켜 떨어지지 않도록 배들을 돕고 있으니, 날이 밝은 후에 조치를 취해도 될 것으로 판단되기에 안심한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일에 앞서 현재의 본선 상황은 조선소 측에 모든 것을 맡겨 놓은 Deadship 상태이니 본선 안전에 관한 근본적인 상황은 우리들보다는 조선소 측에 먼저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깐돌이가 밥을 먹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