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납세다

지역 따라 조금씩 달라져 있는 한국어 말투

by 전희태

몇 가지 일용품과 호박씨를 산다고 월마(WALL MART의 중국식 이름)를 다녀오면서 흘렸던 땀을 배로 돌아오기 바쁘게 샤워로 떨어내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따르릉 방안의 전화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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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예, 선장님이지요?

-그렇습니다.

대답하며, 누구지? 상대의 목소리를 가늠하니 이번에 승선한 조선족 중국 선원중 일인인 것 같다는 판단을 한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예, 별일은 아니고, 좀 만납세다.

하는 대답에 조금은 생소한 말투에 께름칙한(?) 느낌마저 받으며 갑자기 무슨 일일까? 의구심부터 든다.

저녁식사를 감독들이 한턱 쓴다고 하여 밖으로 나갔었는데, 혹시 그런 와중에 배안에서 그들 간에 무슨 다툼이라도 발생한 것인가?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서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으니, 

-무슨 일이 있는 거는 아니고, 하여간 좀 만납세다.

라는 말만을 계속 반복한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뭐! 이런 무례한 친구가 있어? 하는 반 말투의 그 대답에 화증이 치솟으려는 걸 침 한번 꿀꺽 삼켜 다독여 주며, -그래 이들의 말하는 본새가 원래부터 그렇지~, 하는 이해심을 찾아내어 앞세워 놓으면서도, 떨떠름하기만 한 변해 버린 우리말의 지역적인 차이를 새삼 확인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하고 그의 방문을 허가해 주는 마음으로 대답해준 후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조선족 선원으로 이곳에서 승선한 U 군이 물방울이 맺혀 있도록 차게 식혀진 칭다오 맥주 2병과 우황청심원 1통 과 웅담 작은 것 한 통을 들고 와서 기다리고 서있는 나의 손에 들려주려고 내민다.

-이건 뭐야?

손을 저으며 얼떨떨해하는 나의 물음에,

-선장님 드리려는 선물입니다.

하는데 술 냄새가 약간 풍겨온다.

이들도 회식하러 나갔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그의 술 마셨음은 이해 주기로 하나, 뭣 때문에? 이런 선물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사양부터 앞세운다.

막무가내로 떠맡기듯이 건네주며 말하는 어투는 계속 껄끄러운 반 말투이다. 음성마저 매우 커서 괜스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어 우물쭈물하다 보니 그냥 받아 들은 셈이 되었다.

-이건 이번 호텔에서 묵을 때 갖고 온 것인데 선장님 쓰세요.

하며 다시 내미는 손에는 유난히도 반짝거리는 은도금을 한 만찬용 숟가락 한 개가 들려있다.

-아니, 이건 또 뭐야?

그의 기이한(?) 행동이 또 한 번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나는 배를 새로이 승선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수저를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집에서 가져온 은수저를 떠올리면서 받아주기를 강요하듯 계속 내 앞으로 내밀고 있는 그 숟가락마저 시끄러움이 핑계 되어 거절에 우물거리고 었었다.


묵직한 중량감을 보여주는 숟가락은 아마도 은도금을 한 제품인 것 같다. 우습게도 나는 그 순간 그 스푼의 야릇한 운명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스푼은 그가 우리 배를 타기 위해 이곳에 와서 기다리는 동안 묵었던 호텔에서 사용하던 비품으로 그가 체크 아웃하던 날 슬그머니 자신의 짐 속에 집어넣어 준 손길 때문에 같이 생활하던 젓가락들과도 헤어져, 그 순간부터 외톨이로 떨어지게 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리라.

스푼의 현재를 상상해 보면서, 양식용 숟가락이니 따라나서야 하는 건 젓가락이 아니라 포크가 맞겠다는 시답지 않은 우스개 생각마저 떠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자신의 할 일은 끝났다는 듯 U는 작별인사를 서두르며 제 방을 향해 쓰적쓰적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본선에 승선하는 동안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돌봐달라는 인사를 곁들이기 위한 방문이었던 것이다.


말투가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반말 투의 언어로 <좀 만납세다.>라고 할 때에는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는가 의심을 가지게 하였지만, 실은 이곳에서 교대하여 승선한 자신을 승선중 잘 보살펴 주십시오.라는 인사치레 차원의 방문이었던 거다.


제깐에는 그럴듯하다는 생각에서, 슬쩍하여 준비한 이상한 선물까지 대동하고 찾아온 것인데, 그런 일련의 행동이 사실은 어렵고 각박한 타국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경쟁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취하는 태도라는 점을 여실하게 이해해준 셈인데, 그리 받아들여 취한 방금 나의 응수는 과연 올바른 방법이었을까?


그가 떠나간 후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아무래도 미심쩍게 된(?) 내 응대가 스스로도 못마땅해 보여 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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