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모습들

목숨 줄이 하나 더 늘은 것도 아닌데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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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 한복판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접 질러진 앞발이 꺾이고 아직 어깨에 메워진 짐 끈도 그냥 묶인 채인, 한 마리의 노새가 자신이 끌고 가던 마차에 실려 있든 잡동사니 물건들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길바닥에 길게 너부러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 노새를 부리던 주인의 모습도 옆에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그 사람도 역시 사고를 같이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퍼뜩 들고 있다.


내가 탄 미니버스가 그렇게 주위를 조심스레 살피며 잠시 머뭇거려 속도를 줄이는 틈새로 창밖을 열심히 내다본 형편이 그런데 서너 대의 합승 버스도 제가끔 차두 방향을 달리 한 채 그 주위에 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그 모양을 구경하고 있다.

아마도 마구잡이로 달리던 여러 대의 경쟁하듯 달리던 미니버스가 길 한복판을 당당히 가로질러 건너려던 노새 마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여 불가피하게 충돌하며 생긴 교통사고인 듯하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차창 밖을 비틀듯이 고개를 뒤로 돌려가며 내다보는데, 아픔의 고통에 두 눈을 끔뻑거리며 슬픈 표정을 띄운 노새의 젖은 눈동자가 이제는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순간적으로 싸하고 아릿한 슬픔 같은 연민의 정이 내 몸을 감싸 안듯 휘감아 온다.


내가 탄 차는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고 경쟁 상대 차가 그냥 낙오되어 떨어진 게 다행스럽다는 식으로 그 광경을 두고 횅하니 앞으로 빠져나와 내빼듯 달려간다. 점점 멀어져 가는 사고 현장을 다시 한번 힘겹게 돌아보며 이곳의 교통질서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길만 있으면 그냥 건너 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모든 도로를 운행하는 차들은 항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가로지르기 행인을 만날까 신경 쓰며 다녀야 하는 상황이 이곳의 교통질서 지키기(?) 제1조 인 것 같다.


중앙분리대를 널따란 녹지로 꾸며 놓고 펜스마저 쳐있는 곳에서도 길을 가로지르고 녹지를 건너 반대편 차선까지 서슴없이 건너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하나뿐인 목숨을 두고 도박이라도 하듯이 행하는 의식 상태가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건널목 길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불편하게 되어 있는 교통체계라는 데에 내 눈이 떠지니 무단 횡단하려는 그들의 행태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곳에 기항한 지 이제 한 달 20 여 일밖에 안되었는데 그동안 교통사고 난 것을 보고 들은 것 모두 합쳐 벌써 대여섯 건이 넘는 걸 보면 확실히 무질서한 도로에서의 횡단이 사고의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고의 소식이 신문에 나지 않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 인구의 1/5을 가진 나라이기에 흔한 게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 알 권리를 강조하며 다스리기를 하는 것은 정권 지키기에 도움이 안 되는 모양이다.


사실상의 언론 통제가 아직도 가능한 나라로 존재하기에 그런 현상을 가지고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하는데,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싶다.


이곳에선 광장이란 이름의 큰 거리의 모이는 곳은 거의 모두가 로터리 시스템으로 되어있어 차들이 알아서 제 갈 길로 돌아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한번 잘못되어 꼬였다 하면 서로 밀고 들어오는 마주치는 차들로 길이 막히는 일도 종종 있다.


양보심이란 전연 없이 우선 자신의 차두를 밀어 넣어 남 먼저 통행권을 확보하려는 운전자들의 의식구조는 말리기 어려운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는 듯하다.

또한 야간에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검은 계통의 색깔 옷을 입고 큰길을 가로지르는 보행인을 보면, 이들은 서너 개의 예비 목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다.



며칠 전 밤중에, 택시를 타고 배로 돌아오던 길에 만나게 되었던 보행인은 4차선 도로를 씽씽 달리던 내가 탄 차를 마치 달려드는 투우를 살짝 비켜서는 투우사 모양 자신과 같이 건너던 일행과의 사이로 우리 차가 빠져나가게끔 만들어 보였다.


그 곡예사 같은 솜씨에 이름도 성도 모를 정도가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난 인연 정도도 안 되지만,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운전자가 잠깐만 한 눈 팔고 방심하면서 그냥 달리기만 했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끔찍한 사고를 생각하게 되니, 지내 놓고도 한참을 그 위험했던 순간을 반추하며 으스스한 한기를 느꼈었다.



이런 인명경시 풍조(?)는, 중국 하면 내 머리에 제일 먼저 팍 들어서는 단어인 인해전술이란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진짜 솎아내듯 하루에 몇 사람쯤 죽어도 외눈 하나 깜짝 안 할 그런 사회가 여기 중국이란 곳이 아닐까? 아무리 좋게 생각하지만 내 결론은 그렇게 가고 있다.


몇 날 며칠을 두고 차를 달려도 띄엄띄엄 한 집씩 있거나 아예 집이 없이 길로만 이어진 큰 나라도 있지만, 똑같이 땅이 넓다는 조건이지만 중국은 그 땅을 달리다 보면, 사람 사는 모습과 집들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라 여타의 큰 나라들과는 첫인상에서부터 벌써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고 이곳의 교통 관습의 풍경에 눈이 익으며 이제는 우리도 그들처럼 길을 건너 다닐 수 있는 곳은 서슴없이 건너가는 일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상황을 확인하며 쓴웃음을 지을 정도까지 되었다.

내 목숨 줄이 하나 더 늘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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