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의 죽음

창공을 가로지르던 날개를 접고 바다로 돌아가다

by 전희태

새벽 4시가 시작되며 오랜만의 아침 운동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꺼먼 떼구름이 몰려들어 여명을 방해하며 굵은 빗방울로 지나가는 소나기를 뿌려 준다. 우선은 바쁘게 뛰어 중간 갑판에 있는 스토어 문 앞으로 비를 피하여 서며, 이미 젖어들기 시작한 상의의 물방울을 털어내는데, 발 밑 크로스 갑판 바닥에 무언가 흘러내리는 빗물에 떠밀려 움직이는 작은 물체가 보인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아 분간이 어려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자세히 살피니 한 마리 죽은 제비의 사체가 약한 롤링의 경사에 따라 흐르는 빗물 위에 떠 있다가 이리 뒤척 저리 흔들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나르던 때의 그 빳빳하게 세워서 펴 들었던 꼬리의 살짝 갈라진 모습이며 몸에 비해 아주 넓어 보이던 날개 모두가 빗물에 젖어들긴 했어도, 살아생전의 날씬했던 모습의 윤곽은 남겨주고 있다.


그러나 점점 늘어나는 빗물에 사정없이 젖어든 몸통의 보드라운 깃털이 어느새 몸에 착 달라붙어 형편없이 작게 줄어든 몸뚱이로 초라하게 변모해간다. 어쩌다 대양에서 매라도 만났을까? 동료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날다가 본선에서 죽음을 맞이하여 그렇게 널브러져 버렸단 말인가?


결국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탈락되어 어쩔 수 없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본선 갑판에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절망을 맛보다가 죽었을 것이 아닌가? 어제 아침 본선의 위를 혼자 날던 바로 그 제비가 아닐까 유추하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곱게 들어다 바다 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기를 한참 더 기다렸다가, 제비의 날개를 들었다. 몸에 비해서는 아주 넓어 보이는 제비의 매끄러운 모습을 다시 생각하며 부드러움마저 기대했었는데, 집어 드는 손가락 끝을 통해서는 빳빳한 주검의 전율만이 찌르르 온몸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알바 없이 무심히 달리고 있는 배의 난간에 가까이 다가서며 손 안에 든 제비의 모습을 향해 가만히 속삭여 준다.


-만약에 환생이 있어 다시 생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렇게 황당하고 외로운 죽음일랑 두 번 다시 당하지 말고

-다음 생은 즐거움 속에서만 살아 보라고, 기원해 준다.


그렇게 제비의 주검을 고이 바다로 보내 주며, 오늘 운동은 그쯤에서 끝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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