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원들이 합심하여 사고를 막아내다
예상대로의 속력도 못 내고 달리는 형편이었는데, 새벽녘에는 기름 유출사고까지 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식적으로 대외에 알려진 유류오염 사고로 통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본선 자체 유출유 대응 팀을 운용하여 오염방제를 실제로 자체 내에서 해결한 유류오염 사고였다. 새벽운동을 위해 4시 55분에 방을 나서서 좌현 후부 갑판을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이어진 보트 갑판으로 나가는 길목에 도달 했을 때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훅 끼쳐오는 기름 냄새가 내딛은 발걸음에 끈적끈적한 감촉을 주니 아차! 하는 놀람과 함께 긴장의 끈이 바짝 당겨왔다. 어둠 속이지만 어렴풋이 판별되는 갑판에 고인 시꺼먼 기름기가 스커퍼(Scupper,갑판상의 빗물이나 해수를 선외로 흘려내 보내는 배출구)로 빠져나가려는 듯 띠를 이루며 닿아있는 현장과 만난 것이다.
그 곳을 흘러 나가면 그냥 바다이다. 깜짝 놀란 마음 추스릴 겨를도 없이 빨리 브리지로 뛰어 올라가 기름 유출이 발생했음을 알리며, 관계된 기름 유출 대응팀을 가동할 마음은 그냥 서두름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바빴어도 기름띠는 밟지 말아야하는데 선외로 흘러내리는 위급한 모습을 본 마음은 빨리 해당부서에 알리려는 바쁜 심정되어 갑판위의 기름기를 밟으며 그냥 선실 통로로 들어왔다. 불행하게도 폐유의 많은 양이 이미 쏟아져 나갔다면 뒷감당하기 어려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니, 아침 운동도 생략하고 기관장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한 후 함께 유출유 처리에 필요한 사항을 한 가지씩 찾아내어 시행하였다.
제일 먼저 더 이상 유출유가 갑판위로 나오지 않게 원천봉쇄 조치를 하며, 기름기가 선외로 빠져 나가는 통로 입구인 스커퍼부터 막아 주었다. 그렇게 한 후 알게 된 상황은 유출된 기름은 폐유로서 우리나라 기항 시 육상으로 하륙 조치하려던 기름인데 이것을 한 탱크로 모아두려고 이송하는 과정에 온도가 너무 과하게 가해져서 생긴 불상사로 판명되었다.
이런 중에도 제일 다행이었던 점은 선외로 배출된 폐유가 거의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기름기의 흐름을 관찰해 보니 스커퍼를 통해 빠져나간 기름띠가 선외 배출구를 조금 빠져 나온 곳 까지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 그 끝이 수선부에 닿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해양오염 한 뼘 전 까지 갔다가 잡힌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제 선외 배출되려했던 흔적도 지우고 오염소지가 있는 외판에 묻은 기름기도 닦아내주는 뒤처리로 유출유처리 대응팀의 일은 계속되었다.
모두들 자다 깬 어려움 속에서도 처리 대응 작업을 위해 각자가 맡은 일에 정성을 쏟는 공동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제일 먼저 갑판상에 흘러 나와 있는 폐유를 모두 주어 담으며 갑판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선외쪽의 기름기 제거에는 그곳이 선미의 굴곡진 부분이라 가까이 접근해서 작업하기가 매우 껄끄러운 곳이기에 혹시 발생 할지 모르는 또 다른 인명 안전사고를 대비한 조심 사항을 알리고 챙기느라 잔소리꾼이 되어야했다.
윈치드럼에 로프를 감아 그 끝에 작은 곤돌라 상자를 달아 사람을 태워 선외로 내려주어 흘러나간 기름 중 선체 외판 굴곡진 하부에 묻어 있는 기름찌꺼기를 막대기에 묻힌 시너로 닦아낸 후 해수로 세게 때려서 씻어 내는 작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수면에 닿는 워터라인까지 기름의 띠가 생긴 게 아니어서, 해중으로 유실된 기름양은 없는 상태의 아주 사고 초기에 발견한 것이니 내가 운동하려다 발견했다는 사실이 은근히 든든한 마음을 준다.
여기서 제일 힘든, 위험한 사람이 곤돌라를 타고 선외로 내려가는 사람이었다. 이번 항차 새롭게 승선한 선원이 그 일을 맡아서 8시경부터 시행을 하였다. 처음 시도에서는 너무 선체 동요가 심하고 바람이 강해서 밑쪽 외판을 다 못하고 9시 20분경 철수를 했다가 10시 40분쯤 바람이 좀 잦아들어 다시 재 시도를 하여 11시 40분쯤 겨우 끝을 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클 정도의 약간의 기름기가 외판에 남아있다지만 그건 별로 걱정되는 상황은 아닌 거고, 그 청소작업을 하고 있을 때 혹시 헬리콥터가 오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으로 안달하면서, 다음 일들을 진행하는 안전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있을 무렵, 하동을 출항할 때, 승선하여 귀빈으로 대우 받으며 이곳 뉴캐슬까지 오신 손님의 13일간 항해를 마무리 지으려고 회사가 대리점을 통해 날려 보낸 헬리콥터가 다가오며 연락을 해 왔다.
마침 투묘후 하선 예정이던 손님을 입항 중 투묘지에 접근을 할 때 하선 하는 게 어떠냐는 본선이 낸 의견을 대리점에서도 오케이 하여 12시에 헬리콥터가 본선을 VHF 전화로 불러 풍향, 풍속등 상황을 물어온 후 본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다. 결국 도착 투묘 예정지를 20여 마일 남겨둔 거리에서 예정 묘박지를 향해 접근 할 때 헬리콥터는 준비된 본선 6번 해치 폰툰위 헬리포트에 안착했다.
조종사가 얼른 내려와서 선원들의 접근을 막고 난후, 꼬리날개를 안전하게 벗어난 자리에서 짐을 받아 옮겨 싣고 손님에게는 라이프 재킷을 입혀준다. 그런 후 자신을 따르게 하여 앞장서서 안전하게 승객 석으로 데려다 앉히고 난 후, 비행기 앞쪽으로 돌아가더니 조종석에 올라탄다.
이윽고 본선 선체에 생겨진 약간의 횡요 운동이 평형을 이룰 때 까지 기다렸다가, 엔진출력을 높이며 발진을 시키더니 잠자리처럼 떠올라 날아가 버린다. 이 작업에서도 안전제일을 앞장세운 사전 준비와 협조로 모든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할 일의 몫을 잘 해낸 결과로 무사히 마친 것이다.
사실 그 손님이 현역이었을 때에는 헬리콥터도 많이 타보는 직책에도 근무했었다니까 그 정도의 헬리콥터를 타는데 대한 안전수칙이야 잘 알고 있겠지만, 그 호주인 조종사가 하는 일에 고분고분 잘 따라 해 주면서 떠나는 모습을 보니, 안전수칙이란 누구한테도 중요하다는 당연한 생각을 되새겨 보게 한다.
아마 요즈음 안전 표어를 만들며 안전상황을 취합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간 열이틀은 잘 지내며 내려왔었는데 마지막 날을 무사히 못 넘기고 유출유 사고를 보여주게 되어 찜찜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느닷없이 발생하는 이런 어려움을 발 빠르게 대처하여 안전하게 끝맺음한 모습을 보인 점은 은근히 자랑스럽다. 손님이 헬리콥터로 떠난 후, 마지막 남은 투묘라는 오늘의 일과를 무사히 끝내기 위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찬찬히 접근하다보니 항계 내에 진입한 후에도 한 시간 이상 시간이 흐른 14시에야 끝났다. 무사히 종료하고 나니 밀려있던 피로감이 한순간에 휩쓸어 온다.
투묘지가 지금까지 이곳 이용 중 투묘했던 중에서 제일 육지 쪽으로 들어와서 해변도 가까운 위치이지만 주위의 투묘한 다른 선박들과는 적당히 거리도 떨어져 있고 수심도 30여미터로 그런대로 괜찮은 장소이다.
그러나 이번 항차 사고가 자꾸 생기는 낌새 때문인지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열흘 가까이 머물러야 하는 묘박지이니, 당직도 철저히 서고 안전에도 신경을 쓰는 분위기 쇄신도 하고, 기름이 새어나오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순찰 강화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