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일 뒤처리를 하며

다시 항해의 일상으로 돌아가며.

by 전희태




AD(8896)1.jpg 당직중인 일항사와 함께

선위(항해 중인 선박의 해도상 위치)를 바르게 찾아내는 곳은 선박의 중추인 브리지 내 해도실이다. 


여기는 동해의 북동쪽 끝머리가 되는 곳.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가 서로 마주 보게 가르고 있는 쓰가루 해협입니다. 오늘 하루 이곳을 열심히 달려 빠져나가게 되면 내일부터는 북태평양의 온갖 모험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되는 거지요.


배는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 할 남아있는 거리가 까마득해 보이는, 이제 겨우 북태평양에 들어설 날을 받아 놓은 입장인데, 벌써부터 귀항하여 돌아가 만날 생각부터 앞서다니, 지루한 마음 절로 드는구려.

지난 두 달간. 신혼 생활은 저리 가라고 여길 만큼 기분 좋았던 동승으로 함께 했던 달콤했던(?) 시간을 뒤로하며 집으로 가셨는데, 도착하시면서부터 편히 쉬기는 했는지요?

무사히 귀가하여 가족과의 재회를 기쁘게 했다는 13일 자 안부 편지 잘 받았고 아울러 덧 붙여 보내준 뉴스도 잘 읽었습니다. 그 정도면 아주 따끈따끈한 축에 드는 새로운 소식이니 앞으로도 자주 그렇게 보내주세요.

벌써부터 출근하며 바빠진 일상의 나날 속에 파묻힐 당신을 그려보며 나도 순항을 위한 일들 준비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답니다. 

사실 소소하지만 남겨진 독크에서 못하고 떠난 일, 쪼끔 부실하게 처리하여 남겨진 것 등을 든든하게 조이기도 하고, 약간의 수리도 보태야 하는 일이 계속 나타나니까 거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통로 벽에 그려진 보기 흉하게 얼룩진 자국들을 닦아내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와 물 바스켓을 들고 나섰습니다.

물론 그곳의 청소 당번은 정해져 있지만, 다른 일들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므로 청소에까지 눈길을 돌릴 여가가 없어 내가 직접 나선 것입니다.

다분히 시위하는 의미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것보다는 진짜 시간이 좀 한가한 사람이 당장 눈에 뜨이고 거슬려 보이는 그런 것들을 생각난 김에 해 치워버린다는 데 더 의미를 두려고 시작해본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혼자서는 좀 버거울 것 같아 출항 전에 새로이 승선한 3 항사를 불러 같이 동참하도록 하였죠. 마침 3 항사는 손가락에 묵주 반지를 끼고 있는 아주 건실해 보이고 힘도 쓸 것 같아 보이는 청년이랍니다.

본선 진급한 2 항사가 3 항사 직을 그에게 교대해주며 알아본 바에 의하면, 2 항사 자신보다도 두 살이 더 많으며 학교는 T수전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어쨌거나 듬직해 보이는 덩치지만 머리에 옅은 금발 염색을 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순진한 점도 보이는 3 항사가 나와 마찬가지로 고무장갑을 끼고 나타나 내 방 앞의 통로 벽부터 같이 닦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스펀지를 물에 적셔 문지르고 마른걸레 수건으로 닦기만 했는데도 한결 깨끗해지는 걸 보니 시작을 참 잘했다는 마음이 우쭐해지면서도, 한편으론 통로 벽을 마무리 짓지 못했는데도 걸레 빨아낸 물이 시꺼멓게 변하는 걸 보면서, 갑자기 콧구멍 속으로 연기라도 들어 마신 것 같은 어려움의 기분이 드는구려.


그러구려. 겨우 내 방 앞 통로와 브리지 올라가는 계단 통로만 했는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걸 보더니 더 하시겠습니까? 하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3 항사가 묻는 바람에 나머지 남은 계단은 내일 할까? 하고 양보를 하며 청소를 끝내었습니다.


너무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이제 슬슬 맛 배기만 보인 것으로 내일부터는 그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하고 물러선 셈이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서. 뉴스를 곁들인 따끈한 소식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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