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에 있다고 모두 당직은 아니네

선교 당직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생각해 보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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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창 안에 독킹 중 선체 페인트 칩핑을 위해 사용하다 남겨진 채 끌어내지 않고 놔둔 많은 모래포대가 있었는데 그걸 9번 창의 수툴(STOOL) 속에다 옮겨 넣고 닫아 버려서 눈가림식의 일을 하겠다는 일항사를 꾸짖고 모두 끌어올려서 선외로 배출해 버리도록 지시했다.


사실 작은 너울에도 은근슬쩍 롤링을 하는 형편에서 해치커버를 열어 놓고 홀드에서 모래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기는 좀 버거운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냥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는 일은 더욱 할 수 없는 것이니, 선수를 좀 돌려서 흔들림을 적게 하여서라도 해치카버를 열어 놓기로 했다.

막상 열어 주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힘들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란 감각이 들 정도로 선체 동요가 적어 불안감이 덜어진다. 

하지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바다 위에서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모자라는 사람 손을 돕기 위해 선교에서 항해 당직 중인 3 항사까지 내려 보내 힘을 보태게 해주며 그 대신의 당직을 서기로 한다.


8시 30분 첫 모래포대들이 세 사람이 끌어올리는 줄에 매달려 올라왔다. 한 번씩 올라오면 그걸 들어다 바다에 버리는 사람은 그냥 맨 몸으로 그걸 들고 운반을 한다.

이렇게 17개를 올렸을 무렵. 지금껏 작업장소만을 내려다보며 셈을 세던 눈길을 돌려 잠깐 앞을 보니 동쪽을 향하고 있는 본선 침로에 비쳐 드는 햇볕의 트랙을 빗겨선 왼쪽 선수에 커다란 섬이 갑자기 나타나 보이고 있다.

저기에 웬 섬? 하는 의문도 잠깐. 그것이 우리 배의 선수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살짝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는 커다란 컨테이너 선박이란 걸 알아채며 저렇게 가까이 다른 배가 접근하도록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하는 자책감이 들어선다.

만약에 상대선에서도 당직자들이 우리 배와 마찬가지로 항해 당직 외의 일을 벌여놔서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않고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피항 협조 동작을 제때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우리 두 배는 서로 충돌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뒷골이 서늘해진다.


게다가 서로의 움직이는 모습으로 봐서 충돌 예방법 상으론 우리 배도 오른쪽으로 배를 돌려주는 협조 동작을 하여 안전하게 서로를 피해서 가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브리지를 지키고 있다고 다 항해당직을 서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이제 정년이 다 된 시기가 되어서야 다시금 그걸 확실히 깨닫고 있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고소를 짓는다.



상대선은 완전히 우리 배의 옆 1.5마일 거리를 통과하여 서진을 계속하는데, 너울을 정선수로 받기에 심한 피칭으로 허연 포말을 배 옆에다 뿌려주며 힘겹게 달려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본선의 작업자들은 계속 모래를 끄집어 올리는 작업을 진행하며 올라온 모래를 바다에 버리고 있었는 데 아차 하는 순간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모래가 2/3쯤 들어있는 무거운 페인트 통을 힘들게 가슴에 품듯이 들고 뒤뚱거리며 캣츠 웨이(CAT'S WAY)를 통과하던 작업자가 경사면에 미끄러지며 들고 있던 통을 떨어뜨리어 갑판을 시꺼멓게 만들고 몸의 일부도 다친 모양이다.


다행히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이 별로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일의 방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난 다음에야 그는 수레를 준비하여 캣츠 웨이를 지난 후 수레 위에다 통을 내려놓고 쉽게 밀어 선미 끝단까지 가서 바다에 버리는 작업으로 바꾸었다. 18번째 통부터 그렇게 하여 결국 33개의 통이 올라오면서 그 작업은 끝이 났다.


나중에 이런 내가 겪으며 생각한 일을 3 항사에게 이야기하니 그는 자신의 당직을 대신 서주면서 밑에 내려가 부원들이 일하는 걸 도우라고 했을 때, 우리 배의 앞쪽에 멀리 나타난 그 배를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나에게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던 모양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직을 교대해야 하는 상황에선 전임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당직에 관한 정보는 후임자에게 똑똑히 이야기를 해서 교대자가 누락됨이 없이 알고 있게 만들어 줘야지 저 혼자 이야기를 끝냈다고 생각해선 안 되는 거란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앞날을 생각해서 한마디 거들어 주며 다시 당직을 교대해 되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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