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검을 무사히 끝내고
또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는 28일 새벽 4시가 되고 있다. 당신들이 사는 한국에선 28일 저녁 8시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겠지만 지구 상 반대쪽인 서반구에 도착해 있는 나로서는 새로운 28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무엇을 했냐고요? 그러고 보니 다른 때 같았으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날 시간이지만 잠을 자기는커녕 눈 하나 깜박이지 못한 채 날밤을 새웠던 것이다.
BULK CARRIER INSPECTION.
바로 그 점검을 도착 즉시의 밤늦은 시간부터 받아들이느라고 고생을 했는데 별로 큰 지적사항은 없이 끝나게 되어 우리 배의 수검에 협조를 하려고 멀리 미국의 포틀랜드에서 출장을 온 주재원과 함께 기분이 좋아져서 뒤풀이의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이렇게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이 찾아온 것이다.
사실 관할기관의 점검이란 것은 아무래도 획일적인 잣대로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이기에 잘 한 일보다는 잘 못한 일을 지적하는 경향이 큰 것이고, 이들이 하는 점검 방법이 우리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서양사람들의 취향을 따른 일이기에 아무래도 생활방식이 어딘가 조금씩은 다른 수검자들의 입장에서는 비록 우리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일이지만, 그 명목이 빛이 바랠 수도 있을 만큼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어딘가 우월감을 가지고 좌지우지하는 방법으로 점검을 진행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인스팩터들의(캐나다 해당 기관의 점검관) 태도를 만나게 되는 경우 우리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당장 다 때려치우고 한바탕 붙어버리고 싶은 순간 등을 참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분마저 가지게 하는 거다.
어쨌건 오늘의 점검 결과는 아무런 불상사(Major Deffect 重지적사항) 없이 무사히 수검을 끝내면서 몇 가지 소소한 일(Minor Deffect 輕지적사항)을 출항 전에 마무리 짓고 그들의 검사를 다시 받아 패스하면 되는 걸로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금 항차 광양을 떠나면서 시작된 17일간의 항해 중 계속 시행했던 이 검사에 대비한 사전작업들이 좋은 결과를 도출해낸 데 대하여 안도와 성취감을 갖게 된 것이다.
항해 중인 일요일에도 쉼 없이 계속 일을 시키며, 언약했던 돌아가는 항해에서는 좀 쉬게 해주겠다던 승조원들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일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선주 대리인인 모양이다. 그런 쉬는 시간은 주겠지만 그동안 일에 치어 밀려있던 여러 가지 훈련만큼은 시행하면서 쉬게 해주겠다고 바로 어제 입항 직전에 선언을 했으니 말이다.
기왕에 잠자리에 다시 들기도 그렇고 해서 아침 식사를 일부러 빠뜨리지 않고 한다. 잠은 좀 모자라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기분 중에 세관이 입항 수속을 하러 승선했다는 연락이 현문 당직자들로부터 왔다.
바쁘게 내려가 입항 수속을 하던 중 지난번 중국에서 연가로 하선해버린 중국 선원이 놓고 내린 필요 없어진 지나간 선원수첩이 발견되었다.
사람은 없고 수첩만 발견되니 혹시 밀항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지 밖에 나가서 확인을 해본다고 그 서류를 가지고 갔기에 그 사실의 전말을 회사에 보고한다.
회사로 보내버렸으면 될 걸 제대로 챙기지 못한 불찰로 그런 일이 생겼으니 남을 욕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책하라는 자성이 생기지만 한편으론 승선 생활 다 걷어치우고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구름같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나 마음을 다잡아 <감정으로 할 게 아니라 이성으로 네 스스로를 다스려라> 하는 다독임을 앞세우며 참고 이겨나갈 작정으로 마음을 돌리기로 한다.
날이 밝으면서 점점 더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가 마음까지도 우울하게 동조시켜서 저조한 기분을 더욱 크게 늘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