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미국 국경을 넘나들다.

by 전희태


진사.jpg 국경선을 넘나들며 구경한 사진들


거의 일 년 만에 찾아온 캐나다의 밴쿠버항. 이곳에 살고 있는 선배 J 씨가 배에 찾아와 같이 골프나 치러 가자는 데 별로 즐기는 운동은 아니지만, 따라 걷는 것만 해도 괜찮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바쁘게 외출 준비를 한다.

그들 부부를 따라 기관장과 같이 찾아간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사양하는 우릴 빼고 플레이에 나선 선배 부부는 걷기만 하면서 마냥 쫓아다니는 우리가 신경 쓰였던지 이곳에서 가까운 국경 공원을 구경하고 오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한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어차피 걷겠다고 만보기를 차고 나온 입장이니 그 의견에 두말없이 따르기로 하며 공원 가는 길의 설명을 자세히 들은 후 서둘러 골프장을 빠져나왔다.


숲 속에 드문드문 떨어져 지어진 집들을 위해 꾸며진 한길을 따라 나무 냄새가 좋아 심호흡을 해가며 걷다 보니 집 앞 도로변에 탁자를 내놓고 그 위에 능금 크기의 사과를 한 소쿠리 가득 올려놓고 비닐봉지까지 옆에 두고 가지고 가고 싶은 사람은 마음껏 가지고 가라는 팻말을 붙인 것이 보인다.



한 개씩 꺼내어 맛을 보니 약간 새콤한데 냄새는 자연의 향이 흠씬 우러나온다. 육이오 때 피난 가지 못한 서울에서 굶어 죽지 않으려고 구하였던 밥 대신 아껴 먹어 보던 서울 자하문 밖 능금의 향수가 문득 생뚱맞게 떠 올려진다.


그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직각으로 만나지는 길이 나타나는데 선배 아주머니가 이야기 한대로 0번 AVENUE이다. 캐나다의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던 설명과 길옆에 작은 도랑이 나란히 흐르고 있는데 바로 그 도랑이 미국과의 국경선이라는 말도 상기해 내었다.

진짜 그 도랑을 건넌 저편 넓은 운동장에는 미국 성조기가 훨훨 휘날리고 있었다.


도랑을 따라 걷다 보니 언덕 아래로 길이 이어져 있고 도랑은 땅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눈치를 봐가면서 언덕 아래를 보니 개를 끌고 나온 사람들이나 하여간 간편한 산보 나오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도로가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에 다다라서 그냥 직진하여 언덕 아래 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또 다른 널따란 공지가 있는 곳에 다다라서 왼쪽으로 꺾인 곳에 서있는 개선문 모양의 아치형 건축물이 지어져 있는 곳을 향했다.


지붕의 한쪽에는 미국 성조기가 반대편에는 캐나다 기가 펄럭이고 있는 약 5층 건물 정도의 높이로 지어진 기념물로 하얗게 칠해진 채 푸른 하늘과 멀리 바다를 배경으로 양쪽에 도로를 낀 평지 위 잔디밭에 서있는 것이다. 

양국이 우호를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건축물로 양국 인들이 자유롭게 쉬고 돌아가는 모양이라 우리도 무심하게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선배 아주머니에게 들은 것 같아 이제는 당당하게 다시 길을 따라 올라와서 좀 전에 지나갔던 캐나다의 0번 도로와 나란히 있는 도랑의 미국 측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시설과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는 그곳에 잠깐 앉아 쉬고 있는데 미국 국경수비대의 지프차가 한 대 나타나서 우리의 옆에서 머뭇거리다가 가버린다. 잠시 앉아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있는데 그 찦차가 다시 와서 살펴보다가 간다.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 우리는 일어서서 캐나다 쪽의 도랑 길로 넘어 아까 지났던 길로 다시 찾아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캐나다 쪽의 구조물과 설명문들을 구경하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만보기를 살핀 후 이제는 돌아가야지 하며 골프장으로 통할 길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캐나다 검문소 부근에서 두 사람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는 게 보인다.



우리들이 배에서 훈련할 때 입는 구명동의 비슷해 보이나 빛깔이 회색인 두터운 옷을 껴입은 남녀가 우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듯이 방탄복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당신들은 왜 미국 측에서 넘어왔느냐? 하는 질문이 가까이 다가서자 나온 첫 물음이다.

우리는 이곳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니

-패스포트 갖고 있느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뭐 하는 사람이냐?

등의 질문이 합쳐 나온다. 

-패스포트는 없고 한국인이며, 선원이고 배가 지금 로버츠 뱅크에 있다. 고 이야기하니 증명할 뭐가 있느냐고 하더니 그런 것 가진 것이 없다고 하니 따라오란다.


사실 아무런 증명서도 갖지 않고 배를 나왔기에 없다고 하면서 구차한 변명이 난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나오게 된 사정을 설명하였다.



친구와 골프장엘 왔지만 나는 골프를 치지 않으므로 친구만 플레이 나가고 나는 여기 공원에 구경하려고 나왔다고 하니 미심쩍어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확인하러 가자며 차를 타란다. 뒷칸을 철망으로 막아 놓은 이른바 작은 닭장차의 일종이다.



차에 태우기 전에 옷 위를 만져서 수색하더니 내 방 열쇠와 주머니에 들어 있던 달러까지 확인한 후 차에 싣더니 아까 걸어서 나온 골프장을 향해 0번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 전, 숲 속의 가운데로 나있어서 공기가 좋다며 심호흡을 하며 걸었던 그 길로 꺾어 들어서는 닭장차의 뒤에 실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차는 골프 클럽 하우스에 도착하여 나의 말이 맞는지를 알아보는 순서가 되었다.


클럽의 서기에게 J 씨라는 손님이 라운딩 하러 나간 사실이 있지 않느냐 하니까 장부를 살펴보더니 있다고 대답해준다. 

그가 자신의 아내와 2시 30분쯤 라운딩 나갔지 않았느냐니까 2시 45분이라고 정정해서 대답해준다. 이로써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혀지니 여자 출입국 관리관이 밖으로 따라 나오라고 하더니 다음부터는 증명서를 갖고 다니라면서 이번만은 봐준다는 훈계를 한 후 그만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분위기로 봐서 제법 시끄러운 일을 당할 뻔한 것이었는데 이 정도로 끝나게 되니 진짜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그들과 헤어져 아직까지 라운딩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선배 부부를 기다리기로 하며 클럽하우스 휴게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 들어 도넛과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만약에 아까 두 번씩이나 우리 곁까지 왔던 미국 측 국경 순찰대가 우리를 불심 검문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더구나 한국인들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집단적으로 월경하다 붙들린 사건이 오늘 이곳 신문에 난 것을 보았었는데 우리는 아무런 증명서와 비자도 없이 월경한 것이니 완전히 범죄자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을 거라는 상황이 지나간 일이지만 가슴을 쓰다듬어 안도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전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 이후 까다로워진 국경 통제가 행해지며 그렇게 되었단다.



요사이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의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시간을 제법 잡아먹는 일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 공원에서 본 검문소에도 수십 대의 차량이 줄을 이어 검문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미국 측 통제가 더욱 까다로운지 차량들 길이가 캐나다 쪽 보다 더 길게 늘어서 있었다. 


환한 한낮에 겪은 짤막한 토막극 같은 이야기이지만 진짜로 썰렁할 뻔했던 순간을 나도 모르게 넘긴 사건이 있던 하루가 조용히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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