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저기압을 배웅하며

by 전희태
Ȳõ-11(5147)1.jpg 선수로 파도를 만나 굉음과 함께 휘날라는 선수루파의 모습



예상했던 저기압의 접근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날씨가 슬그머니 찌푸려지며 뒷바람이 곧 앞바람으로 바뀌고 파도도 제법 칠 것으로 각오한 그 예상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에 마음이 걸린 몇몇 사람들은 잠도 자지 않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더니, 결국 휴게실에 가서 비디오를 틀어 놓고 거기에 빠져들어 보려는 모양이지만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이 그런다고 해서 망각되는 건 아니니 할 일 없이 피곤만 쌓이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모습을 그대로 넘길 수 없어 빨리 가서 잠이나 자 두라라고 이야기하며 모두를 그들의 방으로 흩어 보낸다. 그렇게 기우뚱거리는 배의 운동에 따라 무언가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려오고 있다. 황천 준비를 철저히 해두라고 누누이 당부했건만 어딘가 손보기가 빠진 곳이 있은 모양이다.

 

즉시 브리지 당직자들에게 알리어 어느 곳에서 소리가 나는 것인지 조사하여 조치하게끔 지시를 하면서 내일까지는 계속 흔들리는 항해가 이어질 것으로 짐작해본다.



쌓여있는 쓰레기 통 옆을 지나치려면 싫어도 언짢은 냄새를 맡아야 하듯, 북태평양에서 저기압의 쓰레기통으로 악명 높은 알래스카 만을 통과하려면 이 계절에는 한두 번 만나게 되는 저기압이 베푸는 흔들림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게 통과의례로 당연하다고 봐야 하는 거다.



이렇게 날씨에 당하고 있을 때는 <어휴! 이번에 들어가면 당장 배를 때려치워야지!> 하는 마음가짐에 빠져들기도 해보지만 막상 이상 기상이 회복되어, 무사히 항구에 입항하게 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식으로 모두 다 잊고 또다시 바다로 나가는 생활을 하는 게 뱃사람들이다.



망각이란 편리한 기재가 사람들에게 존재하니 그런 일을 이상하게만 보며 생활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그동안 참으로 줄기차게 흔들리는 뱃사람의 생활을 이어왔다는 느낌은 북태평양에서 저기압을 만날 때마다 가져 보곤 한다.



배가 좀 작게 선체 운동을 하게끔 침로를 야금야금 보정해보라는 지시를 당직사관에게 지시해주려고 브리지에 다녀오기로 한다. 

풍속을 40 knots에서 50 knots 사이에 놔둔 풍향풍속계의 바늘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확인하며, 거의 정선수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뀐 풍향과 988 hpa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기압계의 눈금을 좋은 기분으로 확인하고 있다. 우리의 위치가 저기압과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증거를 나에게 알려주는 일이다. 


그런 모든 상황이 우리가 예상한 대로 움직여주는 저기압임을 확인시켜주어 앞으로 한나절이 지나면 훨씬 기상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예상 또한 은근히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렇게 이틀 정도 더 가면 유명한 유니막 수로에 도달해서 예전에 아내와 함께 보았던 그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산이며 푸른 하늘을 볼 것이란 기대까지 가지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이번 캐나다 기항에서 물가가 예전과는 달리 많이 올라있다는 느낌과 전에는 없던 세금도 생겼는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도 14%의 세금이 따로 붙고 있었다. 

선원회관에서 열쇠고리를 몇 개 샀는데 거기서도 세금을 넣어 계산하고 있었다.


전에는 선원들을 위한 일이라고 치부하여 세금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 꼬박꼬박 세금을 계산하는 카운터의 할머니를 보니 여기도 많이 빡빡해졌구나 하는 심정이 들며 캐나다를 은근히 좋아했던 감정이 약간은 멈칫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게다가 예전 캐나다까지 동승했던 아내가 말하던 그 아름다운 구름은 여름나라한테 가버렸는지 아예 보이질 않고 회색의 하늘에 바람도 꽤나 귀찮게 불어 대어 부두에 접안하고 있었던 동안 내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당직 서느라고 모두가 피곤했었다.


 그러나 엊저녁에 만난 기상은, 별로 크다고 생각지 않은 파도를 동반한 걸로 느끼기로 했지만, 그래도 밤새 우리 배를 지나치며 할퀸 상처로 왼쪽 갑판 중간에 부착되어 있는 파이로트용 사다리의 발판을 구부리고 손잡이를 휘게 하고 계단을 몇 군데 용접해야만 쓸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독크에서 수리 잘하고 나온 첫 항차에 그런 수리 개소가 생기다니 하고 불만을 가지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으로 엊저녁 파도로 인해 흔들어 젖히는 배 안에서 은근히 떨리는 속마음을 다독이며 눈치를 보고 다니던 사람들의 우려가 그나마 그 정도에서 그친 것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을 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저기압이 점점 멀어지는 현상은 이렇게 나 내 마음을 홀가분하니 만들어 주니 슬그머니 우리나라의 가을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란 걸 파랑새 이야기같이 떠올려 보며, 사정이 허락한다면 금 항차 포항 기항 시 근교로 가을 단풍 구경이라도 가보고 싶은 계획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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