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신'이 태안을 방문하려네요

by 전희태
황천-11.JPG


우리가 호주를 벗어나 조마드 수로로 들어설 무렵.

남위 12도 동경 140도 정도의 위치에서 저기압으로 태어나 몸매를 갖춰가며 슬금슬금 올라갔는데 처음에는 대만을 향해 가는 것 같더니 만 어느 순간 마음이 바뀌었는지 오키나와를 향해 몸을 뒤튼 후, 다시 전열을 가다듬듯이 조용히 움직이며 황해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태국 이름으로 '천둥의 신' 이라던가 뭐 그런 뜻의 마치 제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 만만치 않은 행동이더니 결국 우리나라 땅에다가 스쳐 지나는 일을 치러내려는 모양이다.



일본의 기상청 예보에서는 우리나라를 관통하여 서해에서 동해로 빠져나가겠다는 그림을 벌써 며칠 전부터 그리고 있었다. 제법 커진 녀석이라 피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나마 월드컵 경기 중에 오지 않은 것을 고마워하며, 우리 집 지붕수리도 참 잘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를 받는 심정이다.



우리 배의 뒤쪽에서 따라 올라오고 있는 또 다른 태풍 때문에 뒤통수가 켕기는 긴장한 상태에서 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 밤부터는 녀석이 속력을 올리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금껏 우리 배 사이와 유지하고 있던 서로 간의 거리가 좀 더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일 새벽 3시면 그 거리가 560마일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제 어떻게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게 피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다가왔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녀석이 어디로 갈 것이냐로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수도 있는 태풍 속성도 있으니 그런 상황에도 기대를 걸어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럴 경우 그 시간만큼 좀 더 멀어지게 피항하는 시간도 벌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간절함을 가져 보는 거다. 

그렇게 믿고 우선은 달리고 있었는데, 이 밤에 수신해보는 일본 기상에서 진짜로 그런 징후를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나오고 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며 절로 감사한 마음이 된다. 

마음속으로 우리 배와 태풍이 별 관계없는 상황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었기에, 그럴 확률이 높아지니 감사한 마음을 하느님께 표시하기 위해 감사헌금을 꼭 해야겠다는 기복신앙의 신심이 절로 포출되어 나오고 있다..

오늘 아침까지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서서 달리는 도망가는 항해까지 각오하며 내일 아침에 그 상황을 결정해 볼 생각이던 게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올라가도 된다는 뜻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아직 까지 확실하게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요사이 기상 관측이 많이 발전하여 예상 확률이 제법 높기에 이번 태풍은 아마도 일본에 상륙하여 태풍으로 서의 생애가 소멸되면서 북태평양으로 사라질 것으로 믿어가고 있다. 



안전하게 태풍과 조우하지 않고 항해를 마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일이다. 

며칠 동안 태풍의 그림자에 계속 짓눌러 대던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동안 마저 써 야지 하면서도 이어 나가지 못하던 편지도 마무리 지어 보냈다.



잠을 자고 나서 아침 다섯 시에 브리지에 올라가니 상황이 다시 달라져 있다. 아직도 태풍의 진로가 유동적이라 어제저녁에 받았던 정보가 100퍼센트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게 되어있어 내 뒤통수가 간지러운 경우는 당분간은 계속 남은 것 같다.



아마 지금쯤 은 집에도 태풍 영향이 있지 않을까? 물난리에 하수도 물꼬를 잘 터 주세요. 어제저녁 보낸 편지에 덧붙였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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