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아래로 태풍 피항 변침을 하다

태풍 피항을 하다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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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외판 철판을 마치 종이장처럼 가볍게 쭈그러뜨리는 태풍에 몇 시간 노출되어 두드려 맞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터지고 찢어져서 그냥 침몰하는 수도 있게 되기에 태풍은 피해 가는 게 가장 상책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어 봐도 속력이 원하는 만큼 따라 주질 못하니 오키나와를 지나 동지나해에 들어설 예정인 8일 이후에는 어쩌면 태풍한테 덜미를 잡힐 수도 있는 거리인 300마일까지 가깝게 될 확률이 높아 아예 미리 넓은 곳에서 태풍을 피해 기다리고 있다가 태풍이 제 할 일을 하며 지나간 다음 안전한 때에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라고 항로 추천 회사로부터 어제 11시쯤 연락이 왔다.


뒤꽁무니에 타초경사(打草驚蛇) 당한 무서운 독사라도 달고 도망가는 형국 같은 찜찜한 마음으로 기를 쓰고 북쪽을 향해 올라가던 선수를 그 전문을 받아 들자마자 즉시 왼쪽으로 꺾어주어 서쪽을 향해 달리게 바꿔준다.

-아! 이제야 도착할 때까지 이어질 뻔한 태풍과의 지루한 신경전에서 벗어나게 되겠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물론 피항을 가는 길도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바람이나 파도가 가장 적게 달려드는 침로와 속력을 유지하고, 무시무시한 바람과 파도의 위력이 좀 삭으러 들은 다음 되돌려 집으로 가는 길에 나설 것이므로, 우선은 태풍이란 거대한 공포의 덩어리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안도감이 그간의 잃었던 생기를 되찾게 해준다. 

그러나 그만큼 옆길로 빠져드는 형편이라 궁극적으론 집에 도착하는 시간 역시 늦어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 정도의 손해는 얼마든지 감수할 일이다. 

작년 중국에서 드라이 독크에 올라갔을 때 수리했던 우리 배의 외판 모습이 다시 눈에 선하다. 당시는 외판이 쭈그러 든 정도로만 피해를 받았지만, 당시 철판이 찢어지기라도 했다면 순식간에 침몰하며 여러 해 전 우리 동료들의 목숨을 거두어 갔던 대양 하니 호 침몰 실종사고 같은 대형사고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던 태풍 조우였다. 

침로를 돌려놓고 나니 날씨도 좋고 해상 상태도 그럴 수 없이 잔잔한데 이곳이 이 삼일 후면 파도가 산같이 생기며 모든 걸 날려 보낼 것 같이 험악한 바람이 지나칠 그런 바다가 될 거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 피항을 위해 지나는 바다는 조용하기만 하다.


아직은 해도 상에서나 기상도 안에서 조그마한 동그라미로 그려지는 태풍의 그림자를 놓고 얼마만큼 왔다고 해도에 그려 넣고 나서 현재의 우리가 있는 곳과의 거리를 재어서 얼마만큼 가까이 오고 있다고 호들갑 떠는 것으로 태풍과의 간접적인 만남을 확인하고 있다.



결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그래서 한사코 상봉을 피하려는 태풍이기에 며칠 정도의 도착 지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마음으로 피항 항해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현재 계속 세력을 확장하며 올라오고 있기에 이번 태풍 역시 초특급의 큰 태풍이 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태풍에 대해 충분하고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며 대처한 후 포항을 향할 거니까 마음도 그에 비례하여 많이 누그러지고 편하다.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에도 태풍이 태어나는 저 아래 동네에서는 다시금 CHATAAN의 대를 잇는 금년도 7번째 태풍으로 변해 줄 열대성 저기압이 생겨난 것을 기상도는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포항에 가 있을 때나 포항을 출항한 후에 영향을 주게 할 위치에 서게 될지도 모를 그런 태풍이 이미 태어나고 있는 거다. 작년에 비해 금년도는 훨씬 많은 태풍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태풍에 대한 소식을 점검하여 해도에 위치를 기점 해준 후 우리와 얼마나 떨어져 있나 확인을 하다 보니 오늘 밤부터 내일 새벽 사이가 제일 가까워지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 같지만 다행히 그 거리가 560마일 정도 떨어진 가항 반원(*주 1)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별다른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사실 지금 이곳의 기상은 아주 쾌적하니 조용한 상태로 현대 과학이 태풍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그렇지 그런 걸 모르던 시절 같으면 큰바람이 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항진을 해야 하는 아주 편안한 그런 상황이다.



방금 항로 추천 회사에서의 전문을 3 항사가 수신하여 갖고 왔다. 우선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태풍의 위치를 확인해야겠는데 500마일의 거리를 태풍의 중심과 두고 항진하라는 이야기가 마지막 권고사항에 들어있다. 

다시 한번 해도 상에 주어진 정보를 기입하고 디바이더로는 거리를, 삼각자로는 방위를 측정하여 안전한 거리가 대만 동쪽에서도 확보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본다.


태풍을 피해가려고 이로 하였던 침로를 다시 원래대로 복귀하여도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어 뱃머리를 290도로 조금 돌려준다. 

우선은 대만의 남쪽 끝까지 가지 않고 남단 가까이 있는 섬을 향해 가다가 그곳에서 북쪽으로 선수를 돌려 본격적으로 포항을 향한 침로 설정은 내일 오후면 결판 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마침 포항지점에서 전화가 온다. 

내일이면 들어간다고 입항 통보를 했던 배로부터 소식이 없으니 궁금하기도 했을 거다. 현재대로 가게 되면 예정보다 사흘 늦어 들어가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답신을 준다. 

저 아래 생기기 시작했다던 또 다른 새끼 태풍은 급속도로 자라나더니 벌써 HALOM이란 이름까지 받아 들고 북서쪽을 향해 껄떡대며 올라오고 있다.



그 녀석의 예상은 우리 배와는 무관하게 일본을 향해 가리라는 예상은 하지만, 금년도에는 무척 빨리 또 많은 태풍의 일생이 부침하여 기상도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든가? 홍콩 앞바다쯤 에서 생겨난 열대성 저기압이 슬슬 우리가 현재 있는 곳으로 나오고 있어 사나흘 후면 이곳도 바람이 다시금 좀 부는 곳으로 만들 모양인데, 그때쯤 이면 우리야 포항 가까이 갈 테니 걱정 안 해도 될 듯싶다.



단지 녀석도 저 아래(북위 10도선 부근)에서 생겨났다면 태풍으로 커 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크기도 전에 움직이다가 아마 일본쯤 가서 없어질 걸로 여겨진다. 

태풍도 사람들 같이 태어난 곳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 둘의 비슷한 점이 있는가를 찾아보는 손꼽음을 해본다.



태풍이다, 바람이다, 장마다. 하며 바쁘게 지날 우리나라에 두고 온 집안을 생각하면서 더위에 몸조심하라는 말까지 덧붙일 여유를 찾음은 이제 우리 부근에서 부침하고 있는 태풍들과는 타협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당신의 건강은 내 건강이나 마찬가지이니, 맡겨 놓은 내(당신) 건강 조심하세요. 나도 당신한테 맡아 놓은 당신(나)의 건강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틈을 내어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비가 억세게 왔어도 아무런 새는 곳 없이 뽀송뽀송 한 집안에서 비 오는 구경을 하는 재미도 쏠쏠할 거라 짐작해보니, 지붕 수리를 잘 해낸 집 식구께 다시 한번 그 수고를 치하해준다. 나도 같이 비 구경을 못한 것이 아주 아쉽다는 엄살까지 덧붙이면서.....



*주 1-가항 반원 : 북반구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진행 방향을 놓고 볼 때 왼쪽은 가항 반원, 오른쪽은 위험반원이라 칭한다.


가항 반원 쪽에선 그 중심을 향해 시침의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태풍이 진행하는 방향 바깥쪽으로 밀어 내주어 우반원 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우반원에서는 바람이 태풍의 중심 쪽으로 밀어붙이게 되어 태풍의 중심부로 이끌리는 경향이 세므로 점점 태풍 중심에 끌려들 수 있으므로 항해 위험반원이라 한다. 

하나 그 두 곳 모두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산더미 같은 삼각파도가 배를 농락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에 설사 가항 반원 쪽이라 해도 원칙적으론 접근하지 않는 게 가장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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