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아직은 멀리 있지만...

미리 피항하는 태풍

by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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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남단을 거쳐 어제 밤새도록 대만 동안을 따라 올라왔는데 태풍도 그저 그만큼의 속력으로 북서진해 올라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이때 이 장소 부근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쪽을 향하려는 결단의 북동행은 아직까지 미적이며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태풍과는 500마일 정도 벌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있건만, 대만 북단을 빠져나오며 만나게 된 바람이나 파도의 달라짐은, 지금껏 필요에 따라 비웃음을 감추고 아양 떨던 사람이 취하는 매몰찬 돌변이 이러한 걸까? 최소 몇 시간 이상은 이런 바람과 파도에 들볶이며 온 배가 들썩거리는 고생에 들어설 각오를 다지며 꽉 다물어주는 입안 가득 씁쓸함이 넘쳐나려 한다.



한편 홍콩 앞바다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도 이름을 얻는데 NAKRI라는 철자이지만 태풍이라 하기에는 너무 어설픈 모습으로 한 며칠 이곳을 방황하다 생명이 다 할 것으로 짐작해 본다.



이러한 태풍의 이름들은 모두 그들이 지나다니는 해역에 있는 14개국의 나라들이 각각 내어 놓은 열개의 고유 이름을 모아 다섯 개로 조를 짜서 연속으로 사용하는데 140 개의 이름이 있으니 일 년에 20~30개의 태풍이 생기는 걸 감안하면 한 4~5년이면 일순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북한이 각각 독립국가로서 할당받은 숫자대로 이름을 내어놓게 되니, 우리 한글 이름이 다른 나라들의 두 배가되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태풍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다익선이라고, 한글 이름으로 인해 한글이란 말 자체가 외국인 항해자 들은 물론이요, 태풍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구나! 여겨봄을 너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이라 폄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만 옆을 통과해서 올라갔지만 대만의 주봉인 5천 미터가 되는 옥산을 비롯한 산들을 못 보고 항해하였다. 구름이 잔뜩 끼고 낮은 비구름이 자주 출몰하여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미 대만을 지나쳐서 동지나해에 들어서 버렸으니 이제 날씨가 회복되어 좋아진다 해도 이미 볼 수가 없는 위치를 항해하고 있다.



이런 기상 상황 하에서 앞쪽 바다에는 안개경보가 발효 중이고 태풍은 싫다 하는데도 자꾸 가까이 다가서려는 호기심 왕성한 짓궂은 강아지 마냥 아직도 500마일 안으로 접근해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형세이다. 

이렇듯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건만 날씨라도 쨍하니 햇볕을 주어 맘을 풀어주면 좋으련만 완전 먹구름 속에 가둬 놓고 있으니 그 증세의 호전을 기대할 처지가 못 되어 우울해지려 는데 아! 그런 마음에 한가닥 청량제로 등장하는 일이 있다.



새벽에는 어둠에 가려 몰랐는데 이제 날이 밝아온 후에 파도를 관찰하느라 자세히 살펴본 선수 쪽에서 대만의 갈매기 한 마리가 선수루 주위를 지키며 우리와 같이 항해하고 있는 거다.


뱃사람들의 친구요 동반자로도 불리는 그 갈매기는 어느새 여덟 마리로 불어나 유유히 날개를 활짝 펴서 활공을 하며 같이 날고 있다. 

매끄러운 갈매기의 활공은 날지 않고 정지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움직이는 배의 선수부를 선도하며 매끈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다. 


사실 아직도 태풍의 진로와 좀 더 떨어져 가려고 일부러 침로를 북으로 정해서 달리고 있는데 그렇게 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시위라도 해서 알려주려는 듯 모여서 함께 하는 그 갈매기 떼를 보며 마음속에는 한 가닥 위안의 길이 열리니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고 있다.



그런 안도의 기분으로 보니 <안개>라고 나온 앞쪽 바다의 경보도 역시 그렇게 걱정을 할 처지는 아닌 듯 여겨지는 기대로 마음을 편하게 갖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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