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이 난 옛날이야기.
낮게 깔린 안개 같은 구름이 휙휙 달려가며 만들어 내는 하늘의 틈새 사이로 푸른 하늘과 높게 있는 하얀 구름의 문양이 흘낏거리듯이 나와 눈을 맞추고는 다시 구름의 뒤쪽으로 숨어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험상궂던 기상 상황이 잦아들면서 태풍이 지나치며 넘겨주고 간 기다란 너울의 끄트머리가 흔들 그네의 조용함 같이 선내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있다.
미크로네시아 괌 등지에 살고 있는 차모로 원주민들의 말로서 <비!!!>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금년도 여섯 번째로 태어났던 CHATAAN이라는 이름의 태풍.
그렇게도 나의 애간장을 녹이며 애달프게 했던 녀석인데 지금은 일본 규슈의 동남 방 해상에서 북동진으로 행로를 바꾸어 정통으로 일본 규슈에 상륙하겠다던 예보에서 한발 물러나 그냥 스치고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며칠간 밤잠을 설치며 고심하게 만들었던 태풍이 이제 그 겁나는 위력에서 우리를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며 안전하게 포항을 향할 수 있도록 멀어져 주면서 날씨도 평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새벽 한 시에도 바람이 세고 날씨가 안 좋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브리지로 방으로 서성거리다가 억지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난 아침 5시였다.
기상상태가 안심해도 되는 상황으로 접어들자, 생각은 문득 지나간 세월 중 내가 배를 타게 된 계기를 이룬 내 생애의 어느 부분을 회상하는 순간으로 들어선다.
1961년 해양대학에 합격하여 부산을 찾아가서 였다. 가입학식이 있고 난 후 정식 입교 전에 피해 갈 수 없는 코스로 한 달 간의 내무 훈련이란 일종의 상선 사관으로 서의 자질이나 체력을 탐색하는 훈련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선박 승선을 위한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 특수 훈련을(군에 입대하여 신병훈련을 받는 코스와 비슷했으나 강도는 훨씬 더 센 것으로 기억된다.)한다는 그 한 달간 내내 자고 나서 눈을 뜨고 집합하기만 하면 큰 목소리로 고함쳐가며 외쳤던 구호가 바로 <해대 정신 5개 조>라고 칭한 학훈이었다.
1. 우리의 이상은 인격의 완성
2. 우리의 생활은 진리의 탐구
3. 우리의 사명은 칠대양 제패
4. 우리의 각오는 바다의 매골
5. 우리의 학원은 명랑한 가정.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시의 고된 훈련 중 매번 집합할 때마다 외쳤던 그 구호가 악에 바친 힘든 훈련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한 달 간의 훈련이 다 지나갈 무렵 여러 명의 신입생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학을 포기하고 중도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정식 입학식에 참여하여 해대 생이 되었다.
고된 훈련을 이겨낸 자부심에 군기마저 세워진 그 후의 한참 동안은 누군가 학훈! 하고 구호라도 외쳐주면 위의 해대 정신 5개 조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끔 되었던 것이다.
이번 항해에 대양 하니 호도 삼키고 해당화 호도 영구 실종 시킨 그 바다를 건너오면서, 우리 배도 작년에 까딱하면 삼킴을 당할 뻔했던 태풍과 조우했었다는 사실을 회사도 우리 배도 상기하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태풍 철 비상 운항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귀가 따갑도록 연속해서 듣게 된 5호 태풍 RAMMASUN, 6호 태풍 CHATAAN 그리고 다시 저 아래에서 달려오고 있는 7호 HALONG 그리고 홍콩 앞에서 생긴 서자 신세 같은 8호 폭풍 NAKRI 까지 피해 오면서 불현듯 해대 학훈이 떠올려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네 번째 구절에 무심치 않은 마음이 머물게 되었다.
지금 몇 분의 동문 동창들이 그 네 번째의 해대 정신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는지 그 숫자를 모두 셈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만 얼른 손꼽아도 다섯 명은 넘는다.
해대를 다닐 때 상륙(외출)할 때마다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 늘 볼 수 있었던 태종대 쪽 입구의 건너편 언덕 위에는, 내가 실무에 나와 일항사를 할 무렵 되어, 선원노조에서 세워 놓은 선원위령탑이 하얗게 칠해진 높은 첨탑으로 우뚝 솟아 으르고 있었다.
해운의 일선에서 승선중 순직한 선원들의 위패가 완성된 첨탑 안에 안치되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바다의 매골>을 외쳤던 여러 동문들의 영혼이 그곳에 잠들게 되었는데, 나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하는 절박한 순간들을 태풍과 어울리다 보면 절로 떠올려 보곤 하였던 것이다.
태풍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지켜보며 혹시 잘못 대처하다 가는 나도 그렇게 먼저 가신 분들과 같이 위패에 오를 수도 있다는 초조감을 나도 모르게 가져봤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학훈에 다가 그런 죽는 자리까지 마련해주며 각오를 다지게 하는 대학이 세상천지에 해대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를 때면 절로 고소를 짓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디로 튀어 들어올지 모르는 산 같은 파도가 호시탐탐이 노리고 있는 황파의 구덩이 속에서 흔들어 대는 선체 운동의 순간순간은 그저 지옥의 문턱을 넘나드는 긴장과 초조함의 연속인데, 비록 누가 옆에 있다 해도 별다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극한의 위기 속이기에, <어서 이 파도를 물러나게 해주소서!>
각자는 그렇게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간절하게 비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아예 500마일 밖에서부터 무조건 피하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지난달 말일부터 근 열흘 간을 우리 뱃길의 옆에서 나타나 계속 같이 올라가며 긴장하게 만들던 CHATAAN이란 태풍도 무사히 비껴가게 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입항 시기가 늦어 지기는 했지만 선체에는 피해가 없이 항해를 계속하였고, 곧 금 항차가 마무리될 포항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란 귀향의 기쁨에 마음이 들떠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