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개월간에 걸친 승선 기간 중 세 번의 국내 기항을 하였지만, 집을 찾아가기는 이번 항차가 처음으로 겨우 하루의 시간을 내어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집의 가족들도 매우 아쉬워했지만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 국내 기항 기간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승선 기간 중에는 입항하면 해야 할 일의 제일 첫째는 집에 가는 일이 아니라, 그 항구가 어디의 어떤 항구이든 간에 찾아온 원 목적인 싣고 온 짐을 부리게 하여 무사히 작업을 끝낸 후, 예정된 다음번 항구로 출항하는 일을 안전히 끝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승선하고 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전력을 기울여 진행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일로서 가족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역시 놓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니 그 양자를 조율하되 본선의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조심함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포항에 기항하여서는, 비록 하루라는 짧은 기간을 집에 다녀오는 데 썼지만, 두 가지 일을 모두 잘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로 인해 홀가분해진 기분 되어 짐을 실을 다음 항구를 향한 항해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거다.
부산과 대마도의 중간 해역이지만 대마도 쪽으로 좀 더 가깝게 붙어서 남하하던 엊저녁 9시경 아내로부터 온 전화가 중간에 끊기면서, 그것으로 휴대폰 통달거리의 한계를 그어버리니 더 이상의 통화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텔레비전은 잘 나오고 있어서 9시 뉴스는 다 봤고 12시 가까워져 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포항을 출항했을 때는 옅은 안개가 있어 시계가 좀 불량하였기에 열심히 전방을 살피면서 항해했는데 대마도에 바짝 붙어 선 밤 시간에는 음력 8일의 상현달이 서편 하늘 가운데에 걸려 어스름한 빛을 내주고 있고 안개도 많이 수그러들어 안심하는 마음 되어 침실에 들었었다.
지금은 장마전선을 지나치면서 제법 뿌려 치는 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지나는데, 공선 항해로 인해, 작은 파도에도 한 번씩 프로펠러의 공회전을 유발시키는 쿵쿵거리는 레이싱(주*1)으로 인해 기우뚱대고 있다.
며칠 지나면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는 태풍이 아직은 저 아래에서 허위단심 서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너무 그렇게만 달리면 우리의 갈 길과 직각으로 만나게 될 수도 있기에, 그런 일이 안 생기길 바라며 열심히 남하하고 있다.
아직은 일본의 규슈 해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지만 내일 아침이면 그나마도 모두 벗어나 태평양에 들어설 예정인데, 육지 에서야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도, 비 오는 그 자체가 낭만일 수 있지만, 흔들이는 바다 위에서는 아무래도 낭만보다는 음울한 기분을 강하게 느끼게 하므로 비 오는 오늘 같은 날씨는 별로 탐탁지 않은 형편이다.
거기에 은근히 주눅 들게 만드는 태풍이 저 아래에서 바람을 돌리고 있으니 그것 역시 기분을 풀 죽게 만드는 셈이다. 결국 태풍의 접근-그것 때문에 감정이 더욱 눅눅해진 것일 게다.
이번 항차 집에서 만난 아내는 무더위 속에 너무나 고생이 많아 건강도 좀 흔들리는 걸로 느껴졌다. 아무쪼록 더 이상 건강을 해치지 않고 무난히 이 여름을 나도록 몸조심하기를 바란다는 메일을 날리며 생각의 고리를 잠깐 집 쪽으로 향해 본다.
마음도 편히 가지고 당신의 장점인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든 일들을 밀고 나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기왕에 먹기 시작한 종합비타민제 열심히 들도록 하고 밖에 나갔을 때 갈증이 나면 우유를 마시도록 해보세요.
사실 보약이란 것은 그렇게 열심히 시간 맞춰가며 챙기는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거랍니다. 물론 당신의 언니가 해준 한방약도 빼지 말고 들어보세요. 약이라면 극구 사양부터 하는 아내에게 보낸 메일의 구절들이다.
바다 위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날씨가 맑기는 한데 바람이 좀 불고 있다. 아마도 어저께 지나쳐간 장마전선을 도와주려는 바람인 것 같다. 그런대로 빨리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배의 성질이 앞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그 영향을 받아 속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좀 문제이다.
저 아래쪽에 있는 태풍은 아직도 서진을 계속하며 당분간은 그대로 달릴 것으로 보이지만 모레쯤이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건 그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일은 최소한 600마일 이상은 떨어졌을 때야 안전한 일이니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간 육지와 좀 가까운 해역을 항해하던 범위를 벗어났기에, 출항 후 지금까지 미뤄두고 있던 갑판상의 석탄 찌꺼기들을 쓸어내는 대청소를 시작하기로 한다. 한바탕 해수를 끌어올려 갑판 상 곳곳을 씻어 내면 모두가 말끔히 치워질 터이고 마음 또한 한결 깨끗해지는 것 같겠고 아침 운동을 할 때에도 신발 바닥을 깨끗이 사용할 테니 그것도 좋은 것이다.
머리 속이 무지근하니 뭔가 걸려 있는 듯 한 느낌을 가지며 아침을 맞이한다. 이미 출항할 무렵 기상도를 보면서 그런 기분이 며칠간 계속되리라는 예감을 갖고 출항에 임하긴 했지만 그래도 없어지지 않고 있으니 좀 그렇다. FENGSHEN이란 이름으로 금년도 아홉 번째로 태어난 태풍이 7노트라는 비교적 서서히 움직이는 동작이긴 해도 우리가 달려갈 쪽을 향해 오고 있기에 만들어지는 신경 증세 같다.
유난히도 금년 여름은 태풍이 잇따르고 있어 9호 말고도 필리핀 위에 열대성 저기압으로 한 개가 세력을 키우면서 위로 가고 있다.
앞에는 두 개의 일반 저기압이 있더니 좀 더 가까이 위쪽에 있던 한 개는 이미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서 가까워지려 하고 나머지 한 개는 아직은 그냥 저기압인 상태로 좀 더 남쪽 아래에 있지만 그것마저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하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상태로 보여 될수록 늦게 변환되어 우리가 지나치고 난 후에 *TD로 되길 기원하고 있다. *TROPICAL DEPRESSION(열대성 저기압)
현재로서는 그런 모든 상황을 참조한 최선의 태풍 피항 방법이란 빨리 달리기를 꾸준히 계속하여 그들 모두를 무사하게 거리를 두고 지나쳐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달리기에 조그마한 영향이라도 끼칠 수 있는 날씨의 변화를 만날 때마다 혹시 태풍이 가까워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발동되면 할 일 없이 초조감만 고조시키기도 한다.
다시금 위치를 곰곰이 체크한다. 9호 태풍이 영향을 미치기에는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는 곳이란 걸 확인한다. 따라서 지금 만나는 작은 기상 변화는 그저 열대지방이 갖는 국지적인 기상 상황일 따름이지 태풍 접근으로 생기는 징후가 아니라고 납득하기로 작정한다.
주*1 레이싱 : 선박이 경 흘수로 항해 중, 프로펠러가 파도의 부침에 따라 수면 위로 노출되고 잠기는 상황이 급격히 변하여, 갑자기 달라진 수압 변동으로 인해 프로펠러 회전에 과도한 부하가 걸려 선체를 떨리게 하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