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널려있는 바다

부스럼이 뒤덮여 있던 어린아이 머리통 같이 태풍이 널려 있네요

by 전희태
JJS_2139.JPG 태풍이 생겨 있는 쪽으로 조심스레 항해하고 있는 배와 스치듯 지나며


부스럼으로 뒤덮여 있는 얼라 머리통 같이 태풍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습이다.

예전 못살고 가난했던 시절인 6.25 때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아이들의 까까머리 위 여기저기에 고름이 찔끔거리던 기계충이란 부스럼 딱지들을 연상시키게 하는 모습이 지금 이 바다 위 곳곳에 태풍과 태풍이라는 이름을 가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열대성 저기압들로 넘쳐나고 있는 거다.



이름하여 태풍 9호 FENGSHEN, 태풍 10호 KALMAEGI(갈매기), 그리고 필리핀 위에 TD 하나, 우리 배 뒤에 TD 하나, 해남도 위에 저기압 하나가 저마다 움직임을 달리하며 이 바다 위를 수놓고 있다. 

다행히 우리 배는 태풍에 시달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끔, 바로 뒤로 젖혀 두고 빠져나온 TD를 끝으로 초기 태풍이나, 태풍으로 터져 있는 자리는 모두 피하여 달려 나와 이제는 안전하게 호주를 향해 항진 중이라 더욱 편해진 마음으로 이들을 보고 있는 중이다.



호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도 지금 형편을 닮아 태풍이 널려 있는 분위기는 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도, 금년도의 이상 기상을 염두에 둔다면, 은근히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하나 미리 걱정하는 건 바보 같은 일, 덮어두기로 한다. 



10호 태풍은 이름이 갈매기이니 한글 이름이다. 현재 위치가 북위 17도 30분에 동경 175도로서 서쪽을 향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인 것 같다. 엊저녁에 태풍으로 이름을 받아 크기 시작하는 녀석이니 그 부근을 항해하는 선박들에겐 고달픈 만남을 주겠지만…. 어쨌거나 이름이 갈매기이니 친구인(?) 뱃사람들을 크게 힘들게는 안 하리라 믿어 보고 싶다.



우리 배가 어제 낮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맞으며 제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 지기 시작하여 뒤에 떨어뜨려 주고 온 TD도 사실은 한 이틀 지난 후 만나게 되었다면 태풍으로 커 있을 녀석이었기에 혹시나 예상보다 빠르게 발달한 후 만나게 될까 봐 은근히 걱정이 많았던 녀석이었다. 


헌데 폭우만 서너 시간 경험 시켜주며 지나치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더구나 겁나게 퍼붓던 폭우가 오히려 우리에겐 더할 수 없는 보너스(?)가 되어 배를 말끔하게 청소하느라 갑판 구석구석까지 뿌려주었던 해수까지 씻어내 주어 선원들이 눈치를 봐 가며 청수를 사용해서 며칠을 두고 해야 할 일을 단번에 끝 내주었던 것이다.

 

더운 날씨가 되었을 때 갑판 위 여기저기에 생기는 해수가 증발한 후 남겨지는 희끗거리는 소금기 더미 마저 안 보게 만들어 주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이야기 여기에 또 나타난 셈이다.



이제는 적도 무풍지대에 진입하고 있으니 해면 역시 밝은 태양 아래 잔잔한 호수같이 되면서 시각적으로 <한 여름이다. 물속으로 풍덩!>을 유혹하는 실정이라 선상 풀장에 해수를 받아 놓고 수영을 해보려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나야 시원한 실내에서 아내에게 보내는 태풍 걱정이 없어졌다는 편지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이 모든 형편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 풀장 사용은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거다.



오후에 받아 본 기상도에서 우리가 어제 지나온 TD가 300마일 떨어진 채 11호 태풍이 되어 FUNG WONG이란 이름을 갖고 계속 대만 쪽을 향해 서진 하는 거로 나오고 있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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