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 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버린 태풍들의 모습들을 기상도 위에서 본다.
날짜변경선 부근에서 생겼던 10호 태풍 갈매기도 내가 원했던 대로 해주려는 듯이 부근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냥 북쪽으로 진로를 잡더니 슬그머니 세력을 쭈그려 뜨려 사라지듯 이미 없어져 버렸다.
유독 9호 FENGSHEN 녀석이 기승을 부리어 920 hpa까지 커지며 북서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너무 그렇게 가다가는 만에 하나 한국 쪽으로 가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 조금 세력이 줄어들어 930 hpa로 되는 걸 보니 계속 약해져 가는 과정에 들어서기 시작 한 거로 여겨지니 그 역시 좀 안심이 되고 있다.
11호 FUNG WONG은 그냥 서진을 천천히 하면서 세력도 그리 크게 세우지도 않았는데 밤부터 다시 뒤로 도는 듯한 방향을 잡으며 마치 그곳에서 도돔바 춤이라도 추듯이 우물거리고 있는 폼이 나중에 북쪽으로 틀어 가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쪽으로 갈 확률도 제법 많은 녀석이라 또다시 은근한 걱정을 주고 있다.
태풍은 진행방향을 바꾸려고 할 때나 그 세력을 크게 키우려 우물거리고 있을 때 주위에서 비구름을 많이 공급받으며 중심기압도 크게 내려가기 시작하는, 즉 태풍의 세력이 커지는 코스를 밟는 건데 지금 녀석이 그런 지경에 드는 게 아닌가 미심쩍어 보이는 것이다.
단지 원래의 몸체가 크지 않아서 커지더라도 특급 태풍으로 까지 변신 가능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보며 그나마 좀 안심해 보는 것이다. 집에서는 지금 늦장마가 찾아와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고 있다.
모두들 더 이상 커지지 말고 빨리 북동쪽으로 틀어서 대~한민국에는 피해를 주지 말고 가라는 간절한 바람을 보태며 매듭을 짓기로 한다.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는 순간순간적으로 장대비를 뿌려주는 틈새를 빠져나오느라고 신경께나 썼는데 이제는 비구름을 모두 걷어 내주고 바람도 잠재우니 조용하게 순항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사람들이 배 탈 날씨이네...>하는 이야기가 떠 오를 만큼 날씨가 좋아졌다는 이야기이다.
바다 위에서는 <날씨 칭찬>은 결코 하지 말라는 징크스가 뱃사람들 간에 풍습처럼 전해지고 있는 데, 만약에 그리 할 경우 날씨가 나빠진다는 이유를 달아서 겁주듯이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그 의미를 기어이 반추해본다면 <나약한 인간아! 자연 앞에 겸손하고 결코 순간순간에 놀아나는 가벼운 판단을 갖지 말고 언제나 듬직하게 대처하라.>는 오랜 경험에 의해 우러나온 생활 철학이 그 안에 있다고 믿어지는 관습인 것 같다.
지금 날씨가 좋다고 촐랑대며 긴장을 풀지 말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황천도 항시 대비하듯 준비하며 살아가는 생활 태도를 가져라. 뭐 쉽게 그렇게 풀이해 보면 비단 바다 위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사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